쿡'스 투어, 앤서니 보뎅, 안그라픽스, 2010(초판)

 

 

 

 

 

 자넨 내일 아침에 전기의자에 앉게 될 신세야. 간수들이 의자에 꽁꽁 묶고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 궁둥이는 지글지글 구워지고 눈알은 맥도널드 너겟처럼 노릇노릇해지는 거지. , 이승에서 먹는 밥은 딱 한 끼 남았어. 오늘 저녁에 뭘 먹고 싶어?”

 요리사들과 이 게임을 할 때마다 대답은 항상 흔해빠진 메뉴였다.

 갈비찜

 저민 푸아그라 한 조각

 토마토소스 파스타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건데.”

 식은 미트로프 샌드위치요. 으음(맛이 생각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게임에 참가한 사람 중에 뒤카스 테이스팅 메뉴(제철 요리 또는 주방장의 추천 요리를 한 끼에 여러 가지 맛볼 수 있도록 가짓수는 많게, 양은 적게 내놓는 코스 요리)’를 꼽은 이는 한 면도 없었다. 빳빳한 드레스 셔츠에 정장에 넥타이까지 차려입고 별 네 개짜리 레스토랑의 의자에 꼿꼿이 앉아서 먹는 식사를 최고의 한 끼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돼지는 살찌고 있어.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는 동안에도 말이야.”

 

 

 

 바로 전날 도버 해협에서 잡힌 후 곧장 비행기를 타고 우리 주방 문간에 도착한 넙치와 서대기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신선했다.(가격을 보면 비즈니스석을 타고 온 게 분명했다.)

 

 

 

 녀석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결정되었다. 어차피 돼지한테서 젖을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혹시 애완동물로 키워 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랄하고 있네. 여긴 포르투갈이에요.안됐지만 녀석은 태어난 순간 이미 장화와 베이컨으로 낙점된 거나 다름없다.

 

 

 

 돼지갈비 한 대를 얻으려면 살아 숨 쉬는 생명을 죽여야 하는 법이다. 돼지의 입장에서 보면 그 갈비 한 대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이미 긴 바지가 어울리는 어엿한 아저씨들이었다.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가는 장거리 비행만큼 비싸고 굴욕적인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한 줄에 열 명씩 나란히 끼어 앉아 멍하니 앞만 쳐다보면서, 다리는 비틀어 접고 목은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은 채, 사료를 담은 수레가 자기 앞에 오기만을 애타게(실로 애타게!) 기다리는 군상들.

 

 

 

 내가 죽거든 뒤집어서 묻어 주오

 온 세상이 내 엉덩이에 입 맞추도록

 

 

 

 충격적이었다거나 숨이 턱 막혔다, 굉장히 추웠다, 뭐 이 따위 표현은 그 경험을 묘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건 투명한 화물 열차에 들이받히는 느낌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나는 샐러드 바를 혐오한다. 뷔페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다. (손님일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원가를 꼼꼼히 따지는 주방장 입장에서 보면 뷔페는 불로소득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가엾은 양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후에도 죽어 가는 짐승의 눈에서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될 그 빛이 떠올라 있었다. 눈앞에 닥친 죽음을 인식하고, 거부하고 발버둥 치다가 끝내는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실망했다, 자식들아. 너희들 전부 다.’ 양의 두 눈이 천천히, 마치 스스로 잠을 청하듯, 서서히 감겼다.

 

 

 

 압정으로 고정시킨 나방처럼 만찬 테이블에 붙어 앉아 카메라를 보고 떠드는 짓은 딱 질색이었다.

 

 

 

 도쿄에는 한 번 보면 인생이 바뀔 만큼 장엄한 풍경을 자랑하는 어시장 중의 어시장인 쓰키지 어시장이 있다.

 

 

 

 누가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난 새벽 4시에 참치 대뱃살 600그램을 먹어 치우는 거라고 대답할 거다.

 

 

 

 일본 포르노는 징그럽고, 잔인하고, 역겹다. 독일 포르노는 징그럽고, 패티시즘이 강하고, 역겹다. 미국 포르노는 따분하고, 천박하고, 섹스를 일종의 대량생산 제품으로 보는 나라답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출시된다. 문제는 영국 포르노인데, 이건 정말이지 포르노계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 수준이다. 영국 포르노는 재치도 없고 창의성도 없고 즐거워 보이지도 않는다.

 

 

 

 얼핏 보기에 영국에서 섹스를 즐기는 사람은 록 스타와 요리사뿐이라고 해도 그리 욕먹을 일은 아닌 듯싶다.

 

 미국이나 호주와 마찬가지로 영국 사람들도 요리사라면 환장을 한다. 그들은 요리사가 나온 타블로이드 신문을 사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요리책을 사고, 도마 위나 식료품 창고 안에서 벌이는 질펀한 섹스를 꿈꾼다. 그러므로 요리가 새로운 형태의 포르노라면, 한시바삐 보급해야 마땅하다.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요리사의 이름을 대라면 벌거벗은 요리사라고 불리는 솜털 보송보송한 금발 청년 제이미 올리버를 빼놓을 수 없다. 제이미는 베스파 스쿠터를 즐겨 타는 척하고이스트엔드의 보일러도 없는 아파트에 들락거리면서 친구들한테 그린 카레를 만들어 먹이기도 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보기에는 돈 많은 애송이일 뿐이다. 텔레비전 전문 요리사인 까닭에 그 친구가 직접 만든 요리를 실제로 먹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홀딱 벗고 나온 적도 없다. 물론 벌거벗은은 그 친구가 제창하는 단순하고, 솔직하고, 꾸밈없는요리를 가리키는 표현일 테지만, 아무래도 적잖은 수의 중년 주부들은 다른 의미로 상상하는 듯싶다. 나는 제이미의 쇼를 볼 때마다 그 친구와 함께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남몰래 패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녀석은 참 기품 있는 돼지였지요.”

 새하얀 조리복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그의 모습은 매력적인 미치광이 과학자가 따로 없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려면 단순히 요리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위험 요소가 수없이 존재하는 주방에서, 언제 일을 때려치우고 편의점을 털러 갈지 모르는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원가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당신이 실패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가득한 예측 불허의 환경에서, 눈부시게 훌륭한 요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훌륭한 요리사가 갖추어야할 자질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BMW 범퍼에 그린피스나 인권 단체 스티커를 붙여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하시든가. (어차피 그 차로 하는 짓이 백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애들 바래다주는 것 말고 뭐가 있겠나.)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열대우림도 보호하시고, 그래야 나중에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든 편한 신발을 신고 그 숲에 생태 여행을 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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