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받지 않는 전화가 있다.
듣건 말건 쉬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의 전화.
돈 꿔 가서 갚지는 않고
계속 밥 사달라 술 사달라 조르는 이의 전화.
말로는 나에 대해 무척 잘 아는 척 떠들어대면서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르는(혹은 모르는 체 하는) 사람의 전화.
막상 통화하면 할 말도 없고 뻘쭘해서
형식적인 문답만 주고받게 되는 떠나간 이의 전화.
이거 사라, 저게 좋아 거짓말 투성이인 제품 판매 전화.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다 포함하고 있는 아버지의 전화.
마치 공식처럼
아버지와 통화한 뒤에는
하기 싫은 어떤 일을 해야 하거나,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게 되거나,
거절한 뒤 찜찜해지거나,
받지 말 걸 하며 후회하게 되거나,
불쾌감을 느끼거나,
분노하게 되거나,
당황하게 되거나,
돈을 쓰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당분간은
위의 몇몇 사람들의 전화는 받지 않으려 한다.
상대가 받지 않는 전화를 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나도 안다.
그러나 받고 싶지 않게 만드는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풀이 자라는 걸 보면 받아주고 싶지, 끊어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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