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등
자리에 앉은
남자, 여자의 등에서는
짐승이 보인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짐승들이
불편한 줄 모르고 불편하게
구부정한 줄 모르고 구부정하게
소란한 줄 모르고 소란하게
그르렁거린다.
낮에 주운 어린 개를
제 자리를 못 찾는 듯 하여
남의 집에 주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 짐승들 모두
남의 집에 주어버렸으면.
14층 베란다에서
1층 받아라- 하며.
그래서 이렇게 깨끗한가
비가 일주일을 퍼붓고 대기가 너무 깨끗해진 어느 날 몇 시간 동안에는
원근감이 모두 무시되고
없던 63빌딩이 보이고
그게 코 앞에 있는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동네 작은 빌라는 먼데 아주 큰 거인의 성처럼 보이고
누구십니까? 하고 오랜만에 보았던 나도 보이고
그 동안 영화 엽서 뒤편에 숨어 살았단 얘기도 들리고
르네상스 컨벤션 웨딩 돌잔치 장수연이란 글씨가
이 냄새 나는 빌딩에서 돌잔치를 한 단 뜻이란 게 보이고
운 좋게도 건너편 탁자 앉은 여자의 보쌈김치처럼 벌어진 팬티도 보이고
덩어리진 구름 속 번쩍이던 회충들이 대단하고
구름은 점점 게는 데
두 시간 전 먹은 점심들은 뭐 하는 건가 싶고
나머지는 모두 구름이 뱉어놓은 모시 조개 같고
그래서 이렇게 깨끗한가 싶고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정신 똑바로 차린 채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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