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등

 

자리에 앉은

남자, 여자의 등에서는

짐승이 보인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짐승들이

불편한 줄 모르고 불편하게

구부정한 줄 모르고 구부정하게

소란한 줄 모르고 소란하게

그르렁거린다.

낮에 주운 어린 개를

제 자리를 못 찾는 듯 하여

남의 집에 주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 짐승들 모두

남의 집에 주어버렸으면.

14층 베란다에서

1층 받아라- 하며.

 

 

 

 

 

 

그래서 이렇게 깨끗한가

  

비가 일주일을 퍼붓고 대기가 너무 깨끗해진 어느 날 몇 시간 동안에는

원근감이 모두 무시되고

없던 63빌딩이 보이고

그게 코 앞에 있는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동네 작은 빌라는 먼데 아주 큰 거인의 성처럼 보이고

누구십니까? 하고 오랜만에 보았던 나도 보이고

그 동안 영화 엽서 뒤편에 숨어 살았단 얘기도 들리고

르네상스 컨벤션 웨딩 돌잔치 장수연이란 글씨가

이 냄새 나는 빌딩에서 돌잔치를 한 단 뜻이란 게 보이고

운 좋게도 건너편 탁자 앉은 여자의 보쌈김치처럼 벌어진 팬티도 보이고

덩어리진 구름 속 번쩍이던 회충들이 대단하고

구름은 점점 게는 데

두 시간 전 먹은 점심들은 뭐 하는 건가 싶고

나머지는 모두 구름이 뱉어놓은 모시 조개 같고

그래서 이렇게 깨끗한가 싶고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정신 똑바로 차린 채 취하고 싶다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11/벽12 - 슬픈 풍경  (0) 2010.10.01
벽10 - prefer  (0) 2010.10.01
벽8 - 서론이 길어도 좋은 건 음악뿐  (0) 2010.09.29
벽7 - 끊어버리는 전화  (0) 2010.09.28
벽6 - 사랑의 주문  (0) 2010.09.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