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풍경

 

 

한국의 젊은 여자들이 극도로 무서워하는 세 가지가 있다.

세균, 벌레, 그리고 햇빛.

앞의 두 가지야 이해할 법하지만, 햇빛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모습은

자외선, 피부 노화, 기미와 주름의 원인, 대기오염 등등의 정보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나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

어쨌거나 햇빛이고, 햇빛을 무서워하는 모습은 흡혈귀나 좀비를 연상 시키기도 한다.

드디어 인간은 햇빛조차 무서워할 정도로 진화했는가 싶다.

 

앞의 세 가지, 병균, 벌레, 햇빛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 세가지로부터의 공포가 즉각적이거나 가시적인 피해 때문이라기 보다

다분히 심리적이며 상상에서 오는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저기 저 손잡이에서 비열하게 웃음짓고 있는 세균들을 목격하고 움찔하는 게 아니라,

왠지 저기 병균이 많을 것 같고 그것과 접촉하면 내 몸 속으로 다량의 세균이

유입될 것 같고(실제로는 매일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저걸 피하면 내 몸속을 깨끗하게 유지할 것 같다고 안심되는,

이 일련의 심리적인 상상과 심리적 과정이 신체적으로까지 현상화되며

깜짝 놀라 튀어오르거나 근육이 수축경직 되며 공포에 떤다.

 

세균은 그렇다 치고 벌레는 더 심하다. 서로가 서로를 목격하는 순간

여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큰 피해자라도 된 것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실제로는 어느 애니메이션에서도 표현된 것처럼

곤충의 시선에서 성인 여자를 보는 것이 훨씬 공포스런 일일 것이다.

크기로 봐도 무게로 봐도 파괴력으로 봐도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결과적으로도 그 상황은 성인 여성의 위기라기 보다 그 벌레의 위기 상황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그 상황은 벌레들에게 비극으로 끝난다).

벌레나 곤충의 일부가 병균을 옮기는 매개체임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의 벌레일뿐만 아니라, 말라리아 위험 지역 등이 아닌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마주친 벌레가 치명적 병균을 지니고 있고, 내가 가만히 있는데

슬금슬금 다가와 너 잘 걸렸다며 병균을 옮길 확률은

생리대 사러 동네 수퍼에 가다 차에 치일 확률보다 작을 것이다

(일반적인 청결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말씀).

 

햇빛도 그 잠깐 3, 4분여 만에 피부를 몇 년 늙게 하고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딱히 야외 활동을 하러 갈 때 빼고는

실제로 햇빛 쬘 일이 많지도 않다, 이 도시에서는.

어떤 면에서 이런 현상은 우리가 공포를 느낄 대상이 나치나 공산당,

삼청교육대, 이스라엘 민족, 양반놈들로부터 생활 속 세균, 햇빛, 벌레 등으로 옮겨진

행복하고 바람직한 모습인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다.

인류가 평화로워질수록 공포의 대상은 다분히 보다 미시적이고

소소한 것들로 변화 되어갈 것이다.

 

다만 간혹, 정말 야외 노동에 의해 피부가 검어진 아주머니들을 보게 되는데,

그 아주머니들의 그런 모습이 젊은 여자들에게는 공포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좀 슬퍼지긴 하지만, 그럴 땐 그냥 슬퍼하면 된다.

다들 그렇게 슬픈 풍경의 한 자락씩을 차지하고 산다.

 

 

 

 

 

 

이 바보를

      말려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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