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애를 위하여
한국에서의 술자리가 가학적이며 피학적인 성격을 띄는 이유는
고통을 함께 함으로써 끈끈한 연대의식을 쌓는 방법 외에
마땅히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거나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술자리는 다분히 전우애를 쌓기 위한 자리인데
그 때문에 술자리에서 먹고 죽자고 하거나
‘어제 전사했다’는 등의 표현을 쓴다.
때론 먹은 것을 쏟아내고 밤새 머리와 속이 아파 뒹굴거리며
심지어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먹고 먹이기도 한다.
필름이 끊기는 상태는 일종의 죽음을 상징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못 볼 꼴이나 못 들어볼 얘기들을 끄집어 내길 원하는데
이 또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여과되지 않은 몰골과 닮았다.
심리학적으로는 즐거운 순간을 함께 겪은 사람들보다
어려운 순간을 함께 겪은 사람들 사이에 유대감이 강하게 형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전우애라는 것은 상당히 끈끈한 감정이며,
실제 전쟁 중에는 전우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기도 하는 강력한 연결고리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진짜 전쟁이 아니며
술 마시고 보이는 꼬라지들, 댄스, 농담, 과장된 웃음에도
여전히 연출된 부분이 다분하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전쟁은 전쟁이되 결국은 상투적인 해피엔딩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채로
진행되는 전쟁이며 누군가 이 룰을 위반할 경우 퇴출 당한다는 것이다.
음담패설 류를 벗어나 누군가 진짜 노골적이거나 심각하거나
다수가 공감하지 못할 자기만의 개성을 끄집어 낼 경우
그는 분위기 다운 시킨다는 명목 하에 제재를 당하게 되고,
결국 머리를 써서 이 자리에 적당한 솔직함과 적당한 과격함 적당한 고양감을
찾아보도록 강요당한다.
아니면 ‘쟤는 왜 저래’라는 꼬리표와 함께 전우애를 함께 쌓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무엇보다, 어쨌거나 우린 다 좋은 사람들이고,
어쨌거나 재밌는 사람들이고,
어쨌거나 내일 다시 부활 할 것이고 우린 보다 친밀감을 느낄 것이라는
거의 정해진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로 치르는 전쟁이
뭐가 재밌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그건 전쟁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고,
군필자들로 이루어진 한국 사회 권력 그물에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는
군대추억 문화의 영역이 여자들과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장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치르는 형태는 대강 이렇다.
사람들이 모이면 술을 시키고 그 순간부터
술은 적군이 된다.
술은 없어져야 할 악의 축이고, 사람들은 각자가 일정 적들을 분담해서 처리해나간다.
적들을 얼마 없애지 못하고 약한 모습 보이는 사람은 군인답지 못한 나약한 동료로서 무시당하며
적들을 초토화시키는 일당백의 용사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 둘씩 전사를 하면 그 모습을 보며 살아남은 군인들은
따뜻하고 포근한 눈빛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전투에의 의지를 다진다.
그리고 동녘이 밝아올 즈음이면 전쟁으로 지친 몸과 머리를 추스리고
다시 한 번 죽지 않고 살아서 맞이한 새로운 하루에 아련함과 힘,
그리고 뭔가를 이겨냈다는 성취감을 맛본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에의 이 과정을 함께 치르며 망신창이가 된 동료들과
포옹을 나누고 헤어지는데 집으로 가는 길엔 결국 다시 쓸쓸함을 느끼고 만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다음 번 전쟁터를 기약하고 전쟁터로 향하게 된다.
그 위대한 영화 <허트로커>에서 지뢰제거병인 군인이 다시 전쟁터로 향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다만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전쟁 이후에는 다양한 전후문화와 전후문학이 양산 된다.
통찰력 있는 관찰자라면 전쟁이란 결국 허무할 뿐이며
그 자체로 모두가 패배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터프한 술자리.
희생과 상처를 감내하기를 강요당하는 술자리.
전우애를 쌓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는 이 터무니없는 목적성.
1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 한 명이야 그냥 미쳤다고 치지만
어떻게 그 지적인 민족으로 소문난 독일인들이 죄다 그렇게 떼거지로 미쳤던 걸까.
‘전우애를 쌓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말도 안 되는 방식의 삶을 의문 없이 명령대로 행하는
죽여도 죽여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하면서
아, 이해가 될 것도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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