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다니구치 지로, 애니북스, 2010(1판2쇄)
<1권>
처음 가보는 골목길을 걷는다.
뒷골목으로 접어든다.
거리의 내장 속에 들어감으로써
몸 속에 괴어 있던 것들이 소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등산인구가 줄었단 말씀인가요?
네. 텐트 같은 용품만 해도 나오는 건 가족용이 대부분이지요.
특별히 작거나 가볍게 만들지 않더라도 괜찮아진 셈이죠.
가스버너만 하더라도 그것을 짊어지고 산 위까지 운반할 일이 없기 때문에
차에 실을 수 있을 정도면 그걸로 충분하죠.
암벽에서 헤매지 않는 겁니다.
아니… 그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죠.
갈피를 못잡고 헤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녀석은 결단을 내려버립니다.
어려운 곳에다 손을 뻗치는 거죠. 마치…
바위를 두려워한 자신에게 화를 내고 벌을 주듯이
그 어려운 바위에 손을 대고 맙니다.
그리고는 결국 거기를 오르고 말죠.
<2권>
등반가는 그냥 오르기만 하면 된다.
그게 그대로 그의 문장과 언어가 된다.
이미 손가락이 한계에 이르렀다.
이 다음은 머릿속으로 계속하자.
너무 깊이 나 자신과 마주하면 이 벽을 오를 수 없다.
나는 혼자다.
온세상 사람들이 모두 죽고 이 벽과 바람 속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다.
내가 만약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해 산을 그만둔다든지
너에 관한 일을 잊어버리고 일상적인 일 따위를 생각하기 시작하거든
나를 데리러 와도 좋아.
“혼자만의 산은 깊다”
- 하세 츠네오
<3권>
그 카메라를 어디서 입수했소?
그것만이라도 가르쳐줄 수 없겠소? 어떻소?
8000미터보다 위쪽에서.
당신이 버린 것,
버리려 하는 것의 크기를 보면
당신이 손에 넣으려는 것의 크기도 알 수 있지.
이를 꽉 깨물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이를 꽉 깨물면서…
그 이 사이에 깨물고 있는 건 의지다.
굳은 의지를 깨물면서 올라가고 있다.
<4권>
성층권의 바람으로 바위가 숨 쉬고 있다.
눈이 얼어붙은 대기 속에서 시간을 곱씹는다.
눕체의 거대한 암봉이 후카마치의 앞에 있다.
그 바로 앞이 아이스폴이다.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쌓인 눈이
얼음이 되어 여기까지 이르는 데
1500년-
그 시간
그 세월 한가운데 후카마치가 있다.
아이스폴 아래 홀로 후카마치는 하늘을 숨 쉬고 있다.
불행과 행복, 이것도 단지 결과일 뿐이야!
살아본 뒤에 얻게 되는 결과야.
행복도 불행도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 아냐!!
… 어떻게 살아가야 좋은 건지 난 모르지만
… 행복할 때도 산에 오르고 불행할 때도 산에 오른다!
이건… 마약이지.
… 마약?
그래. 한번 산에서 바위벽에 달라붙어보았다면,
거기서 그것을 맛보았다면
일상 따윈 미지근한 맹물이나 다름 없어.
내 사진을 … 찍어라.
내가 달아나버리지 못하게…
속옷은 극한의 겨울산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울로 된 속옷과 면 속옷은 같은 두께라면 보온력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면은 흡수력은 있지만 젖으면 보온력이 급속하게 떨어진다.
울은 땀을 빨아들여 그것을 체온으로 기화시켜 방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겨울 산에서 조난한 사람 가운데 울 속옷을 입고 있던 사람만이 살아난 예는 적지 않다.
아무리 짐을 가볍게 해도 최종적으로는 25킬로그램 가까운 짐을 지니고 움직이는 셈이 된다.
되도록 짐을 가볍게 만든다…
그렇게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비로소 등반 중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할 만큼 했다는 확신이 들면 불필요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등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고소에서는 체력이 저하되어서 자신의 체온으로 발의 온도를 유지하지 못해.
젖은 곳이 얼어붙는다.
동상에 걸린 발로는 빙벽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을 수 없어.
그 빙벽에서 요구되는 등반 기술은 일반적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확보도 없이 빙벽에 붙어 있다.
이 높이라면… 떨어지면 죽는다. 이런 상황이 주는 압박은 크다.
그 광대한 풍경 속에서 후카마치는 강하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점으로서 의식 속에 조감되었다.
12월13일
오전7시30분 쾌청, 바람은 없다.
바람도 눈보라도 없다.
무방비다
남서벽은 하부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있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하부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5권>
왜 달리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달린다.
자신이 어째서 저항하고 있는지,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간다 – 얇은 시간이다.
짙은 시간을 그는 이미 알아버렸다.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눈앞에 닥친 곤란을 피할 수 없다.
어려움을 뒤로 미루면 그것으로 산을 오르는 일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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