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솔, 2007(1판2쇄)
“한 세기마다 한 5년쯤 풍요로운 시절이 있게 마련이지. 물론 그 후엔 모든 게 사라지지만…… 자넨 아마 다음 풍요의 5년까지 살 수 없을 걸세. 물론 난 말할 것도 없구…… 그때가 다시 온다면…… 그나저나 펭귄은 잘 있소?”
“두려워 말아요. 두려워한다는 건 위험한 거니까.”
“여기는 조용하기 그지없군. 이런 고요한 곳에 앉아 글을 쓴다면……”
“아무도 자넬 방해하지 않을 걸세.”
세르게이가 친근하게 말했다.
“삶이 방해한다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빅토르가 말을 꺼냈다.
그 말은 세르게이가 모스크바로 떠났다는 말인데.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고독의 벽에 벽돌 하나가 더 얹힌 셈이다.
“내가 볼 땐 말이지. 즐거운 펭귄은 만화영화에만 있는 것 같아……”
“비쨔 아저씨!”
흥분한 소냐가 발코니 문 앞에 서서 외쳤다.
“고드름이 울고 있어요!”
다시 해빙기가 찾아왔다. 바야흐로3월 초순이었다.
도대체 암흑의 세상에서 그 암흑이란 것이 무엇일까?
자명종을 손에 들고 눈에 가까이 갖다 댔다. 이 단순하고 정확한 메커니즘이 알려주려고 하는 시간 따위엔 관심 없었다. 완벽한 정적을 원했지만 째각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우습긴 해도 시계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시간뿐임을 인정하면서, 복도로 들고 나가 현관 바닥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삶의 최종 결과는 언제나 같다. 바로 죽음이다. 닫힌 문을 손으로 더듬고, 건드린 흔적을 문에 남기면서 ‘무엇이든 건드리며’ 걸어왔다. 하지만 그 흔적은 자신의 기억과, 이제는 부담을 주지 않는 과거 속에 남아 있다.
문득 자신의 운명보다 다른 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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