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다 화장실 간 여자

 

 

커피를 마시다 가방 들고 화장실 간 여자

의 엉덩이를 생각한다 검정 스키니 바

지와 우산처럼 펼쳐질 팬티

자동 펼침 버튼을 더듬는 남자친구의 검

지손가락을 생각한다 화장실이 멀

면 멀수록 돌아오는 시간이 길

면 길수록 내 생각도 쫄쫄쫄 따끈하게 세상을

따라 흐를 것이다 여자가 마시던 커피는

화장실과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빛깔

이다 포크에 묻은 호두파이 찌꺼기는

잠시 후 그녀의 입안에서 씻겨나갈 것이다

그녀의 화장실에 장마가 졌으면 좋겠다 때

늦은 가을 장마 앞에 앉아 어깨 가디건을 홀로 추

스리며 찬비가 퍼지는 것 거품과 함께 밑으로 흐

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거울 앞에선 몸의 앞뒤를 돌려보며 누구에게나 가슴엔 장마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치켜 올리는 검은 바지 사이에

올빼미 한 마리 외롭게 울다 날아가고 자기 자리 돌아온 여자가

대체 시간이란 무얼까 생각하는 동안 물기를 털 듯 초침이

움직이고 그 파장이 밀려와 내 커피잔에 작은 동심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작은 구멍을 닮은 시간을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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