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방랑, 후지와라 신야, 작가정신, 2010(초판1)

 

 

 

 

 

 …… 그것은 메마르고 깨어 있다. 퇴적지에 흩어진 뼈는 햇빛 속에서 군데군데 하얗게 도드라지고, 그림자를 만들고, 강의 잔물결에 씻기고 그리고 다시 마르고, 그것은 하나의 돌 조각처럼 차고 단단하게 깨어 있다.

 

 

 

 자신의 시력이 미치지 않는 아득한 원경 저편에 이 보이는 것 같을 때,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손을 모으고 있으면 그 무지로 인해 나름대로 구원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고약하게도 그것을 직접 보고, 만지고, 그곳에서 숨을 쉬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기어코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원경이 중경이 되고 다시 근경이 되고 결국 그 원경에 도달했을 때, 익히 보아온 일상의 잡동사니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문득 예전에 자신이 있던 기점을 돌아보면 그 먼 땅이 어쩐지 꿈결처럼 아름다워 보이고, 변덕이 심한 그는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에 휩싸인다.

 

 

 

 이 노란색 고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가로누워 있다.

 

 

 

 비뚤어진 상자 모양의 그림자가 쌩쌩 달리고 있다. 나는 그 그림자를 타고 달리면서 말없이 고민에 빠져든다. 메마른 계절에 목구멍이 물기를 원하듯……

 이 고프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사유를 줄기차게 거부하는 이 풍경에 불만이 쌓여간다.

 무슨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차에서 내려 키 높이에서 바라보는 평지는 무섭도록 귀찮은 넓이를 갖고 있었다.

 

 

 

 바위 사이에서 낭창낭창한 줄기 하나가 위로 뻗어 있었다팔꿈치를 세운 갓난아기의 키 높이 만한….

 

 

 

 이를테면 피사체로서 한 사람의 승려를 대할 때 느끼는 것인데, 남성을 찍을 때의 감촉보다는 여성을 찍을 때의 감촉에 가깝다.

 

 

 

 내 안에서 태어난 들개가 산 너머에서 울었다.

 

 

 

 힌두교 백성도 그렇지만 티베트의 라마교 백성도 왼쪽 방향으로 돈다. 돈다는 것은 중심을 만드는 일이고, 그래서 그것은 신을 의도하는 동작이 된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밉상의 돌이 있었다. 이 신의 단상에도 속세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내가 속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돌을 보고 쥐어박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다는 자체가 이상하다.

 

 

 

 내세라는 것이 불교의 다양한 교전 속에 현세에 필적할 만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교화하는 바에 선동되어 그것을 믿게 되었다는 설명은 알기 쉽다. 그런데 도대체 인간이란 단지 의 꼬드김에 넘어가 일신을 바칠 만큼 그렇게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어버릴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의 이름은 이 불모 과혹過酷한 현세의 법칙 속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손자에게 전수하는 한숨 섞인 꿈의 시…….

 

 

 

 방대한 말이 만연한 내 국토에서 이 고지의 불국토에 찾아와 또다시 사람들이 쏟아내는 방대한 양의 말에 맞닥뜨린다.

 그 두 국토의 두 가지 말, 걸치는 옷의 색깔은 달라도 그 방대한 양의 말들이 끝없이 메우려 드는 정체 모를 서로 다른 형식의 공동空洞을 나는 이 두 국토 위에서 본다.

 

 

 

 들개는 진언을 물어뜯었지만 어느 한 자도 자신의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들개는 내달리고 뛰어올랐지만 서쪽으로도 동쪽으로도 나아가지 않았다.

 들개는 서 있었다.

 

 

 

 오래된 도판에서 본 적이 있는, 고대 티베트의 귀부인들이 평생 골치를 썩이던 몸서리치는 한가함 끝에 발명했다는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기괴한 머리 모양(올림머리와 모자와 보석 장신구를 조합한 듯한, 면적이 얼굴 크기의 열 배쯤 되는 기괴한 머리 모양으로, 그 자체가 자신의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남에게 과시하는 장식이며 아울러 자신의 평생의 재산을 보존하는 금고 구실도 한다)에 맞먹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머리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노파들은 아주 드물게 그런 일로 두세 마디 말을 나누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말없이 앉아 해가 갈수록 외계와 단절되어 자신의 머릿속에 닦아놓은 과거와 미래로 통하는 산책로를 오락가락할 뿐이었다.

 

 

 

 지면을 불어 지나는 느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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