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사이,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2011(1판 1쇄)
상대가 메시지를 인지했다면
그 다음은 그 사람의 자유다.
그런데 이 자유가 문제다.
여학생은 남자는 샘플이라는 가설을 근거로 자기 주위의 남학생을 떠올려보자. 남학생은 자신을 샘플이라 가정하면 된다. 가령 주위에서 가장 키가 작은 학생과 큰 학생의 차이를 숫자로 표시했을 때, 여학생보다 남학생 쪽이 차이가 크다. 이번에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과 적게 나가는 사람의 차이. 이것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가 같은 경우, 아마 여학생보다는 남학생의 폭이 클 것이다. 한마디로 다양성이 있다.
또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이나 가장 작은 사람, 가장 무거운 사람, 이런 사람들도 대부분 남자다. 마니아나 오타쿠, 성격 이상자, 비정상적인 흉악범죄자 역시 여자에 비해 남자가 훨씬 많다. 이것은 분명 샘플로서 그 폭이 넓기 때문이다. 샘플이라면 가능한한 다양한 유형이 있는 게 좋으니까.
지금도 전체적으로는 키 큰 남자가 인기 있지만 자신보다 키 작은 남자가 좋다는 여자도 있고, 반대로 자신보다 키 큰 여자가 좋다는 남자도 있다. 이런 예외도 필요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모두 똑같으면 어떤 격변이 있을 때 다 같이 절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살아남는다면 분명히 인류는 존속할 테니까, 그런 관점에서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거나 편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보험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남자의 존재 가치 자체가 성생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본류인 여자에게 환경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사명일 테니까. 그래서 남자가 발기 능력이나 생식 능력을 높이기 위해 열중하는 것이다. 비아그라나 값비싼 약을 사먹으면서까지 말이다.
말이란 동시에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는 여성에게 인기 있는 남성의 조건으로, 키가 크고 학력이 높고 수입이 많은 것을 꼽는데, 이것을3고高라고 표현한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먼저 ‘머리에 은銀’, 은발을 꼽는다. 머리가 벗겨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음이 ‘주머니에 금金’, 이건 금방 알 수 있다. 돈이 많다는 의미다. 그리고 세 번째가 ‘가랑이에 강철’이다.
스승인 도쿠나가 하루미 선생님이 따라와서는 “마리, 단어를 전부 올기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아는 부분만 통역하세요”하고 말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통역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진짜 아는 부분만 통역했더니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 통역의 요령이다. 우리는 말을 옮길 때 말의 부품인 단어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에 얽매여 정확히 옮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가 탄생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단어가 출현하는 순간은 이렇다. 우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하는 것이 생긴다.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른다. 지금의 이 기분과 머릿속의 생각을 뭐라고 해야 할까. 슬프다, 아니면 햄버거가 먹고 싶다, 하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이 많다,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그런 모호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역을 할 때는 이 모호함을 다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말이 생겨난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쳐야만 한다. 말이 새겨나고 그것을 듣거나 읽고 해독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하는 개념을 얻어서 그 개념을 다시 한 번 말로 한다. 코드화해서 소리나 문자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살아 있는 말이 될 수 없다. 결과만, 즉 말만 옮기는 것이 빠를 것 같지만 사실은 앞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빠르다.
왜냐하면 말이란 그 부품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국제’는 국가와 국가 사이
국제화, 국제화 하는 걸 보면 나는 요즘 일본인이 국제화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앞서 말했지만 ‘국제화’라 할 대 일본인이 말하는 국제화는 국제적인 기준에 자신들이 맞춘다는 의미다. 지구촌, 국제사회에 맞춰간다는 의미.
미국인이 말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은 자신들의 기준을 세계에 보편화한다는 의미다. 자신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들은 정당하고 정의롭다. 자신들이 법이다.이것을 세계 각국에 강요하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똑같이 국제화라고 하지만 자신을 세계의 기준으로 하려는 ‘글로벌리제이션’과 세계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국제화’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도랑이 있는 것이다. 정반대의 의미다.
일본인이 세계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의 세계 혹은 국제사회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의 전통적인 습성으로, 일본인에게는 그때그때의 세계 최강국이 곧 세계가 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세계 최강국이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하면, 기본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 이 두 가지만 보고 문화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일본인이 영어를 중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특별히 영어로 축적된 문화에 매료되어서라기보다는 미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에 의존해 살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타산적이고 품위 없는 발상이다.
이렇게 해서 다른 모든 정상회담의 참가국은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일본만 28년 동안 줄곧 영어를 경유했다. 영어라는 필터를 통해 교류해왔다는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말 이상한 일인데, 이렇게 이상한 일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이상하다. 이것은 국제화를 착각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영어라는 세계 최강국의 언어를 통하면 세계를 알 수 있고, 세계에 발언할 수 있고, 세계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국제화란 세계 최강국의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다. 문화라는 관점에서 세계를 보면,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약해도 어느 언어, 어느 문화든 어떤 의미에서 똑같이 풍성하고 재미있고 가치가 있다.
내가 이런 점을 실감한 것은 국제회의 현장에서다. 그곳에선 다양한 언어의 동시통역사를 만나게 되는데, 모두 프리랜서라서 자유롭고 활달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화제도 풍부하고 재미있다. 그 중에서 이야기를 제일 따분하게 하는 사람이라 개성이 부족한 사람이 영어 통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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