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잔상

 

한밤 침대에 누워

아직 덜 꺼진 형광등 잔상 아래서

아직 덜 꺼진 어릴 적 동네 놀이터를 떠올렸다

뺑뺑이 하나 없었지만

거기엔 모든 게 있었다

거기엔 내가 있었으므로.

이태원에서 신사동으로

서울을 헤집으며 먹고 마시러 다닐 때

핫하다고 소문난 곳에서 나 또한 핫한 사람이라도 된 듯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한 사람들 중 하나일 때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꽉 찬 마음 없이 어디나

고개 숙이고 손 벌리고 있는 건

부족한 마음, 부족한 것 투성이였다

그렇다.

나는 늙어가고 있었다.

하얗게 세어가고 있는 뒷머리가 한 움큼

동네 놀이터를 향해 날아가 눈처럼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나는 어릴 적 나에게 죄를 짓고 있다.

몸을 일으켜 불을 다시 켜면

잔상은 오히려 사라지고 없다.

 

 

 

 

 

 

 

 

'so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류 그리고 이름  (0) 2012.04.19
자살자의 대부분은 여름에 죽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0) 2012.03.21
2012 첫 책  (0) 2012.02.20
모험어른  (0) 2012.02.17
염소  (0) 2012.02.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