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지오그래픽 코리아 20124

 

 

 

 

 

 

 

타이태닉 호 다시보기

 

 

타이태닉 호는 2시간 40분만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는 2208명의 사연을 담은 비극적인 서사극이 펼쳐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한 사람은 비겁하게도 구명정에 타려고 여자 옷까지 입고 변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품위를 지켰고, 많은 이들은 영웅적이기까지 했다. 선장은 선교를 지켰고, 악단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으며, 마르코니 무선통신 기사들은 끝까지 계속해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난파 현장을 생각할 때 언덕 위의 그리스 사원처럼 그림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난파 현장은 초토화된 산업 현장 같습니다. 강판과 리벳, 보강재 더미들뿐이죠. 난파선 같은 곳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피카소를 아주 좋아해야 합니다.” 그는 말했다.

 

 

그때쯤 짐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뒤라 가족이 그와 대화하려면 모스 부호를 쓸 수밖에 없었다. 연기감지기를 조작해 삑, 삐빅 하는 소리로 점과 선을 나타내는 식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마르코니 무선통신사였어요. 모스 부호로 생각하고, 심지어 꿈까지 모스 부호로 꿨다니까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침몰현장에 33번이나 잠수해 들어가 매번 평균 14시간을 보냈으니 스미스 선장보다 내가 타이태닉 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셈이다.

 

 

 

 

 

 

 

 

 

K2

잔인한 산에 숨겨진 위험과 욕망

 

 

K2는 고산 등정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보다 239m낮지만 오래전부터 산악인의 산으로 알려져왔다. 산세가 예리한 삼각형인 데다 주변 지형 위로 우뚝 치솟아 있어서 실제로 전형적인 산의 모습을 갖췄을 뿐 아니라 등반하기도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하다. 2010년 말까지 에베레스트는 5104회의 등정 기록이 있는 반면 K2등정기록은 단 302회에 불과하다.

 

 

그녀는 모험심이 남달라 1994년에는 급기야 카라코람 산맥을 등반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브로드피크에서 악천후 때문에 정상 정복 시도를 포기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 마침내 기다란 능선의 맨 끝자락에 있는 8051m 정상 바로 밑20m지점까지 도달했다. 기분이 들떴지만 등반 중 목숨을 잃은 한 산악인의 시신을 본 터라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그녀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행복과 기쁨, 그리고 죽음이 이토록 긴밀하게 한데 얽혀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20061, 독일의 시사 전문지 <슈피겔>은 그녀를 일컬어 죽음의 지대의 여왕이라고 했다. 삶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고고한 군주의 모습은 K2베이스캠프에서 설맹이 된 양에게 선글라스를 씌워서 고통을 덜어주려 했던 섬세하고 이타적인 그녀의 실제 성품과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그러나 언론에 비춰진 그런 이미지 덕분에 그녀의 강연회 입장권은 매진됐고 후원자들에게 강한 인산을 남겨 그녀가 전문 산악인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줬다.

 

 

거위털 방한복을 단단히 챙겨입은 랄프 두이모비츠와 게를린데 칼텐부르너가 제4캠프로 올라가는 루트와 죽음의 지대가 시작되는 지점을 살피고 있다. 죽음의 지대란 해발 8000m 이상의 고지대로 산악인들이 산소통 없이 등반하면 인체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구간이다. “산소가 없으면 추위를 이기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두이모비츠는 말한다.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지방을충분히 연소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몸 속에서부터 얼어버리는 거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K2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얼어붙은 산비탈엔 등반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골이 즐비하고 시신들이 파묻혀 있는데도 산악인들이 K2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게를린데는 사람들로부터 왜 K2에 계속 가느냐는 질문을 줄곧 받아왔다. 오랫동안 그녀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프레드릭의 죽음이 K2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죽음 자체가 잔혹한 것일 뿐, 산이 잔혹한 것은 아니었다. 산은 산일 뿐이고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산에 찾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죠.”

 

 

822일 월요일 아침 7시경. 게를린데, 바실리, 막수트, 다리우스는 제4캠프를 출발해 이들이 한결같이 그리던 꿈의 정점이자 지구의 정점인K2의 정상으로 향했다.

 

 

며칠 뒤 막수트가 토미에게 설명한 당시의 심경은 이랬다. 막수트는 땅에다 등산화로 선을 하나 그으며 이게 한계선이라고 했다. 이어서 그 선 너머 50cm쯤 되는 곳에 등산화를 갖다 대면서 우리가 한계선을 이만큼이나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린 한계를 완전히 벗어났어요. 나는 내 전부, 심지어 가족, 아내, 아들, 딸까지 모두 걸었던 겁니다.”

 

 

 

게를린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평생의 꿈이 이뤄졌다.” 그날 그녀의 홈페이지에는 1700만 명이 접속했다.

 

 

오후 3시에 이들은 비탈길 아래에 도착했다. 20m를 오르는 동안에는 아주 기분 좋게도 눈이 정강이까지만 왔다. 그러나 눈은 곧 가슴 높이까지 깊어졌다. 이들은 50걸음마다 선두를 바꿔가며 길을 내던 것을 이제 10걸음으로 줄여야 했고 막수트와 바실리는 더 자주 교대했댜.

 

 

게를린데는 K2 정점을 향해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후618. 사방에 온통 산봉우리들이었다. 그녀가 전에 올랐던 봉우리들,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녀의 목숨도 앗아갈 뻔했던 봉우리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마침내 밟고 서 있는K2만큼 정성을 들인 봉우리는 없었다. 온 세상이 내려다보이는K2정상에 홀로 서서 그녀는 주변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게를린데는 그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토록 강력한 체험은 내 생애 처음이었어요. 마치 내가 우주와 하나가 된 느낌이었죠. 정말 신기하게도 한편으로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는데 또 한편으로는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엄청난 힘이 솟았어요.”

 

 

K2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는 3분의1 이상이 하산 도중에 발생한다.

 

게를린데는 제1캠프에서 그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랄프가 써놓은 편지를 발견했다. 1m가 넘는 두루마리 화장지에 쓴 편지에서 랄프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거듭 다짐하고 자신이 중간에 발길을 돌린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난 당신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선물 중에는 K2 정상에서 만세를 부르는 게를린데의 사진을 붙인 라인산 대형 적포도주 병도 있었다. “보통 나는 만세를 부르지 않아요. 그땐 여왕이 된 기분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온 세계를 껴안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게를린데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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