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아이콘

 

 

 

 오늘날 철학은 세계의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그저 세계의 해석interpretation’으로 여겨진다. 책은 우리에게 세계보다는 저자에 대해 알려준다. 책을 읽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이다. 철학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은 세계의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다. 이렇게 진리가 의심받는 시대에 철학은 차라리 예술에 가까워진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철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세계의 올바른 기술이 아니라, 세계의 참신한 해석이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관점주의perspectivism.

 

 

 

 영환관에서 아이들은 종종 영화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나온다.

 

 

 

 공인의 개념에 대한 오해, ‘입증이라는 표현의 문법, 개인적 궁금증과 사회적 의혹의 혼동. 이 세 가지 오류가 하나로 합쳐져 이윽고 이 사태의 가장 커다란 역설을 낳는다. ‘그들은 사실은 철저히 의심하면서 의혹은 굳건히 신뢔했다.’

 

 

 

 오늘날 대다수의 대중은 국가와 시장, 정치나 언론에서 떠드는 애국적 수사의 배후에 특수계층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이미 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모를 때나 다름없이 행동한다.

 

 

 

 테르모필의 협곡을 막고 있는 스파르타의 용사들에게 페르시아의 왕 케르케스는 무기를 내놓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이 제안에 레오니다스가 보낸 답변은 딱 두 마디. “몰로 라베우리 말로 와서 가져가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 말은 그리스 육군 제1군단의 모토로 사용되고 있다. 스파르타의 여인들은 전쟁에 나가는 남편이나 자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방패를 들고, 혹은 방패 위에 들려.” 승리하여 방패를 들고 돌아올 게 아니라면, 전사하여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는 얘기다.

 

 한두 마디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스파르타식 어법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디테일은 제쳐두고 곧바로 사태의 본질을 치는 화법. 그것은 절제와 금욕을 통해 몸에서 불필요한 동작을 때어낸 고수의 검법을 닮았다. 뛰어난 검객이 단 한 합에 상대를 베듯이, 트위터리언은 단 한 마디로 사태의 단면을 베어야 한다.

 

 

 

 말로 상대주의를 선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현실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는 데에 있다. 어떤 가치가 진정으로 중요한지 말해줄 객관적 기준 없이 우리는 살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선택을 대체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또 그 선택이 선택되지 않은 다른 입장들에 부당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 데서나 붉은 살 드러내는 이 좌파 바바리맨 쇼는 그냥 웃어넘기자.

 

 

 

 신학은 타인을 심판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기를 움직이는 동력이어야 한다.

 

 

 

 텍스트에는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만, 이미지에는 처음과 끝이 없잖은가.

 

 

 

 디지털은 사진과 그림의 구별을 무너뜨렸다. 앞으로 사진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게다.

 

 

 

 세계의 기분

 

 

 

 형식언어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문학의 언어가 너무 다의적이어서 혼란스러울지도 모르나, 문학적 정보처리의 본질은 바로 그 애매모호함에 있다.

 

 

 

 종교와 이념의 신봉자들이 흔히 보이는 독단적 태도는 실은 타인의 비판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쫓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 존재하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삶의 근원적 무의미를 망각해버리는 것이 노예의 도덕이다. 반면, 주인의 도덕은 모든 주의와 가치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거기서 나오는 허무의 상태를 기꺼이 끌어안는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니힐리스트의 길일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예수와 플라톤은 현세를 더 잘 모독하기 위해 내세를 발명했다.” 니체는 삶을 역겨워한 이 도덕의 설교자와 미덕의 이론가를 다시 역겨워한다.

 

 

 

 우리가 벽을 바라볼 때 액자는 그림에 속하나, 우리가 그림을 바라볼 때 액자는 벽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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