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케이션, 김승일, 문학과지성사, 2012(초판)

 

 

 

 

 

화장실이 붙인 별명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까. 나는 시멘트를 가능성이라고 불렀다. 수건걸이를 설치할 때. 가능성에 못이 박혔다. 이봐, 가능성 기분이 어떤가? 가능성엔 기분이 없었다.

 

 바닥에 고인 물 때문에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타일은 간격을 원했다. 물은 간격을 타고 하수구로 간다. 천천히. 동생이 샤워를 하면서 오줌을 눈다. 변수로군. 나는 동생을 변수라고 불렀다. 이봐, 간격에게 사과를 하지 그래? 변수는 배신이었다.

 

 엄마는 변기에 앉아 거실을 바라보았다. 왜 문을 열고 싸는 거야? 텔레비전이 하나잖아. 아빠는 거실이었다. 부모가 죽자. 변수에게 거실은 학교였다. 변수는 급식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형이 학교에서 돌아와 학교로 들어오면 변수는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형은 자꾸 지각이었다. 거실이 사라지고 있었다.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아무도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았다. 네 달이 흐르고. 변기에서 쥐가 튀어나왔어. 그렇다면 변기는 수영장이로군. 다섯 달과 여섯 달을. 나는 행진이라고 불렀다.

 

 지각은 지각인데도. 쥐가 무서워서 똥을 누지 않았고. 나는 화장실이라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다시 행진. 이제 나는 캄캄한 창고 같았고. 학교가 된 거실처럼. 간격은 변수 같았다. 이봐, 수영장. 창고 안에 고여 있는 기분이 어떤가? 똥이 없어서 쥐가 죽었어. 가능성에게 화장실을 맡기고. 굶어 죽은 쥐를 보러. 나는 창고에 갔다. 캄캄한 가능성 위에 부모처럼 누워. 배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하는가?

 

 

 엄마가 양파를 튀겼어. 나는 그 양파튀김이 어린이날 선물인 줄 미처 몰랐지. 그래서 맛있게 먹은 것인데. 먹고 보니 어린이날 선물이었고. 깜짝 놀란 나는 체하고 말았던 것이다.

 변기에 한가득 게워내면서. 내가 양파를 다 게워낸들 선물을 또 사줄 리는 없잖아.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내가 하루 종일 운다고 해서 선물을 또 사줄 리 없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한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법이 그렇다니까. 양파가 마지막 선물이었어. 마지막 선물을 토해버렸어.

 화장실 안에는 시계가 없고 거실로 나가야 시계가 있고. 오후 세 시쯤 되었을 거야. 아홉 시간. 내 마지막 어린이날이 고작 아홉 시간 남았다는 걸.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지.

 화장실 문을 잠그고. 바닥에 누워서 낮잠을 잤다. 양파튀김이 제일 좋다고 네가 저번에 얘기했잖아? 엄마가 문을 두드렸어.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할 말은 없고. 그저 엄마가 알아주기를.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기념일인지. 엄마가 알아주기를.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기념일인지. 엄마가 알아주기를.

 나는 신께 기도드렸다. 그렇게 중요한 기념일인데 화장실 안에서 허비하다니. 너도 참 바보로구나. 차가운 타일 바닥에 엎드린 채로. 내가 얼마나 낭비한 걸까?

 그러나 내가 낭비한 만큼 엄마가 나를 이해한대도. 엄마는 또 양파를 튀길 것이다. 최선에 최선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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