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고독, 파올로 조르다노, 문학동네, 2012(1판1쇄)
마티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빠를 따라 웃었다. 그리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아빠의 말들이 자기 안으로 들어와 오래된 와인의 질척거리고 두터운 침전물처럼 배 속 밑바닥에 가라앉도록 내버려두었다.
마티아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다가, 우주에서 너무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려는 인공위성처럼 곧 몇 미터 떨어져 섰다.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양쪽 배낭끈에 엄지손가락을 걸고, 벽 속으로 사라지고 싶어하는 사람 같은 표정으로 뒷벽에 기댄 채 기다렸다.
소수素數는 오직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소수는 모든 수가 그렇듯 두 개의 수 사이에서 짓눌린 채, 무한히 연속하는 자연수 안에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다른 수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 소수는 의심 많고 고독한 수다. 그 때문에 마티아는 소수에서 경이를 느끼곤 했다.
어느 때는 소수 역시 다른 평범한 수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그럴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는 셔츠의 물 자국이 마르듯 삶에서 멀어져가고 있고…
받아들이기 두렵지만 그녀와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일들이 가치 있어 보였다.
갈지 말지 어서 결정을 내려, 그는 생각했다. 1이 아니면0인 거야. 이진법처럼.
그는 마티아가 자기 주위에 파놓은 심연을 존중할 줄 알았다. 오래전에 그것을 뛰어넘으려다 그 안에 빠지고 말았으니까. 이제는 그 심연 가장자리에서 허공에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그쪽은요? 왜 여기 남기로 했어요?” 잠시 후 나디아가 그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여기에 산소가 더 많을 것 같았나봐요.”
그래, 마티아. 그녀는 자주 마티아를 생각했다. 또다시. 그는 그녀가 앓는 병 중 하나였고, 그녀는 그 병에서 낫고 싶지 않았다. 인간은 단 하나의 추억만으로도 병들 수 있었다.
자신은 알리체의 인생과 아무 상관 없지만 그녀는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친딸이나 다를 바 없이 그의 삶에서 몹시 소중한 존재였다.
누가 자동차까지 여행가방을 옮길지를 놓고 일부러 실랑이를 벌이고,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각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정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처럼 부질없이 이야기하려 노력할 것이다.
알리체가 마티아 쪽으로 몸을 숙였다. 순간 마티아는 지구의 중심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눈길이 갔다.
그는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에 손목을 댔다. 마티아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멈추게 하려 할 때 아버지가 하던 방법이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볼 때마다 미켈라가 생각났다. 잠을 자거나 숨 쉬는 걸 떠올리는 것처럼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생각이었다. 여동생은 물살에 부서져 천천히 강물 속에 녹아들었고, 그 물을 따라 그의 안으로 돌아왔다. 미켈라의 분자들이 그의 몸 곳곳에 퍼져 있었다.
'oth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0) | 2012.12.29 |
---|---|
문학청춘 - 2012년 봄 (0) | 2012.10.27 |
에듀케이션 - 김승일 (0) | 2012.10.27 |
몰아 쓴 일기 - 박성준 (0) | 2012.10.01 |
북항 - 안도현 (0) | 2012.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