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코리아 2013년 12월호
걸어서 세계 속으로
걷는다는 것은 앞으로 넘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우리의 몸이 거꾸러져 쓰러지는 참사를 막아준다. 그렇기에 걷기는 믿음의 의식이 된다. 우리는 매일 그 의식을 치른다. 두 박자의 기적, 시의 운율처럼 한 번은 멈추고 한 번은 내딛으면서, 앞으로 7년간 나는 걸어서 지구를 횡단할 것이다.
첫째 날, 나는 동이 트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얼마나 굵고 촘촘한지 숨이 막히고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눈이 아닌 먼지였다. 엘레마의 마을에서 기르는 수백 마리의 염소, 양, 낙타가 움직이면서 먼지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낙타는 거기에 없었다.
목이 마르면 세상이 달라진다. 세상이 수축된다. 깊이도 사라진다. 사막은 올가미처럼 우리의 목을 죈다. 갈증을 느끼는 뇌는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대의 거리를 한눈에 빨아들여 실제 거리보다 가까워보이게 한다. 시야를 확대시켜 물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다. 목이 마를 때에 물을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소녀는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로 내쫓았다고 했다. 결국 총격전까지 벌어졌고 양쪽 모두 부상을 입었다.
이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미국에서는 금광 채굴업자들이 노스다코타와 사우스다코타 주의 블랙힐즈에서 수 족 원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하지 않았는가?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을까? 오늘날에도 공공개발을 이유로 삶의 터전에서 내쫓긴 사람들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우리의 땅뿐만 아니라 기억까지도 쓸어버리는 급속한 변화의 시대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숨가쁘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의 집단 기억은 파괴되고,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식들이란 희미해지며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마저 사라지고 있다.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테라의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권력과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다.'
인구통계학자들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인간의 93%에 해당하는 1000억 명이 넘는 인간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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