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안그라픽스, 2013(13쇄)
책상 위에 가볍게 턱을 괴어보는 것만으로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법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 가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구미의 모더니즘이 일본 문화라는 위장 속으로 섞여 들어올 때마다 '그럼 일본적인 것은?'이라는 딸꾹질 같은 물음이 일본의 근대 디자인 역사 속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MIT의 존 마에다John Maeda의 평가에 따르면, 컴퓨터는 '도구'가 아니라 '소재'이다.
기묘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똑같은 창조성이다.
후카사와 나오토는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우산꽂이를 디자인하라고 하면 대부분 머릿속에 '원통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후카사와 나오토는 그러한 발상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관 앞 벽면에서 15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콘크리트 바닥면에 폭 8밀리미터, 깊이 5밀리미터 정도의 홈을 파기만 하면 된다. 우산을 세워 두고 싶은 사람은 무엇보다 우산 끝을 고정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런 행위를 내다보고 새겨진 홈은 틀림없이 그것을 찾는 우산 끝에 의해 발견될 것이고 그 결과로서 현관 앞에 우산이 정연하게 나열될 것이다. 이 '홈'이 바로 우산꽂이다.
사용하는 사람은 이것을 우산꽂이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행위의 결과로 우산이 정연하게 나열된다. 후카사와는 그것으로 이미 디자인은 완료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조합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세점'과 같은 이미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첫 번째이고 그것이 들어가는 장소는 그다음이 된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그 상업 공간을 마츠야 긴자라고 부를 이유조차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종이는 미디어의 주역에서 내려와 실무적인 임무에서 해방된 덕분에 다시 본래의 '물질'로서 매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무인
그러나 나는 이렇게 책이라는 미디어를 선택했다. 그것이 이 정보를 종이에 인쇄된 문자로서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며 묵직한 중량을 가진 물질로서 사람들의 손에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가방에서 꺼내어 기분 나는 대로 페이지를 넘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며 시간이 지나면 풍화되어 골동품이 되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디자이너로서 여러분의 손에서 이 책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연구도 한다. 말하자면 정보를 다음 글줄로 연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보를 소중히 하겠다는 관점에서 책의 매력을 의식하고 있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강한 기호를 갖게 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브랜드가 그러한 방향성을 추구한다면 무인양품은 그에 반대되는 방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즉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목표로 삼는 것이다.
상상해보자. 만약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면 어떤 상품, 어떤 매장이 만들어졌을까? 혹은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면 어떠했을까? 나아가 근래 들어 눈부시게 생활 의식이 성숙하고 있는 중국에서 무인양품이 시작되었다면 어떤 제품군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런 상상이 오늘날에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보편성' 그리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태어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수집하여 가장 합리적인 공정과 투철한 디자인을 통하여 상품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세계에 유통해 나간다는 발상이 앞으로 무인양품의 커다란 비전이 될지 모른다.
무인양품의 광고 콘셉트 'EMPTINESS'
상품의 모태가 되는 시장의 욕망 수준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홍콩에서 먹는 중국 요리는 맛있지만 도쿄에서라면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그것이 주방장의 기량에 관한 문제라면 솜씨 좋은 주방장을 홍콩이나 중국에서 데려오면 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이 격차는 노력한다고 해서 메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주방장이 아니라 고객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중국 요리를 찾는 고객들의 숫자를 비교하면 도쿄는 처음부터 홍콩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제가 '스시'라면 입장은 당연히 뒤바뀔 것이다.
공간 자체의 품질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 공간을 생활에 맞추어 '편집'한다는 합리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는 바닥, 벽, 천정, 부엌, 목욕탕, 화장실, 통신 인프라, 수납공간, 문, 건축 철물, 가구, 조명 그리고 다양한 생활 잡화로 생활공간을 편집할 수 있다.
'원래부터 세계에 중심이란 없다.'
뛰어난 것은 반드시 발견된다.
숲에 개미집이 있다면 최첨단 카메라나 영상 기술을 통해 그 섬세한 공간을 멋진 리얼리티로 방문객에게 체험시킬 수 있다. 마치 진짜로 '개미'가 된 것 같은 현실감으로 '개미집'을 배회할 수 있다.
당시의 기획 담당자들은 '새의 눈, 곤충의 눈이 되어 숲을 체험한다.'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는데,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 미생물이나 유전자 수준으로 '숲'의 정교함을 탐방할 수 있을 것이다.
포장 테이프는 그러한 계획의 제1호였다. 일본의 친근한 자연을 모티브로 '남생이', '붉은 붕어', '풀'을 포장테이프 표면에 컬러 인쇄한 것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것은 모양이 인쇄된 '디자인 잡화'가 아니다. 포장 테이프를 '미디어'로 바라본 발상이다.
테이프 하나로 서류용 봉투를 200통이나 봉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상품이 200배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다 쓰고 나면 형태도 남지 않는다. 모든 것은 메시지로 변해 버린다.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다루는 것은 '정보'라는 의식이 차츰 뚜렷해지고 있다.
디자이너가 관여하는 이상, 정보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정보를 제품이라고 가정한다면 전기면도기에도 품질이 있듯이 정보에도 품질이 있을 것이다. 이 '정보의 질'을 높임으로써 커뮤니케이션에 효율이 생겨나고 감동이 발생한다. 즉 '정보의 질'을 조절함으로써 그곳에 '힘'이 태어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일을 처음 시작한 20년 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자신은 직업으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디자이너'가 아니라 조금 다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 통념적 디자이너의 이미지, 즉 표현에 뛰어난 아티스트가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종사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이지만 디자이너의 '-너' 부분은 뛰어난 자질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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