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3(1판 18쇄)
1.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에게는 완전한 면죄가 주어진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닌 몸이라는 것이 가톨릭 교리의 기본인데, 그 원죄에 일상생활에서 범하는 사소한 죄까지 더하면 특별히 나쁜 일을 하지 않았어도 죽은 후 천국에 갈 확률이 점점 줄어든다...
2. 질병 등 불가피한 이유로 참가히기 힘든 자는 다른 사람의 참가에 필요한 비용, 즉 의복이나 무기를 구할 돈을 헌금할 것.
3. 동산과 부동산을 불문하고 참전자가 남기고 가는 자산은, 로마 교황이 보증하고 소속 교구의 사제가 직접 책임지고 감시해서, 그가 귀국할 때까지 보전한다.
4. 십자군 참가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산을 팔아야 하는 경우, 또는 그 자산을 담보로 빚을 내는 경우는, 정당한 값을 받을 수 있도록 교황이 보증하고 주교와 사제가 책임지고 감시한다.
5. 십자군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자기가 속한 교구의 사제에게 신청하고 허가를 받은 후, 십자가에 서약하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다.
6. 십자가에 서약한 후에도 출발하지 않거나, 혹은 출발했어도 도중에 일찌감치 돌아와버리는 자는 곧바로 파문에 처한다.
독일인답게 성실한 성격의 고드프루아도 어쩌면 3개월에 걸친 알렉시우스와의 줄다리기를 통해, 오리엔트화한 비잔틴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충성 서약이란 그것을 서약한 자가 충성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안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위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대도시를 공략하기는 무척 어렵다. 집 안에서 버티는 상대를 계속 집 밖에서 공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병력과 군량이 충분하다 해도 무더위와 혹한, 비와 눈과 바람을 고스란히 감수하면서 공격해야 한다. 더군다나 배후에서 적의 원군이 나타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역병도 발생하기 쉽다. 적과의 전투에서 죽는 자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위생상태가 나빠 죽는 자가 더 많은 것이 공격하는 측의 고민 중 하나였다. 더구나 공격하는 내내 병사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역사상 명장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성전攻城戰을 싫어했다.
수비대원만이 아니라 일반 주민도 가차 없이 살육했다. 마아라트알 누만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남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살해되었다. 여자와 아이들 역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노예로 팔려갔다.
이런 때에는 꼭 어디선가 유대인 상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포로들을 사들인 것도 이들이었다. 그리스도교도나 이슬람교도나 이런 그들의 역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유대인 상인들은 이교도의 노예화를 인정하던 오리엔트에서 악역을 떠맡고 있었다.
조건을 내건 이슬람측이나 이를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측이나, 이 '평화롭게'라는 조건을 샤이자르와 하마를 비롯한 각 도시를 공격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들어가되 그 근방은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던 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샤이자르 태수의 제안을 수락한 십자군은, 교외를 행군할 때는 방목된 양을 거침없이 빼앗아 '평화롭게' 들어간 도시에서 팔고 그 돈으로 말을 샀다. 안티오키아 공방전 중 식량부족으로 말까지 먹어치운 탓에 말을 탈 수 없는 기병이 절반이나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롭게', 천여 명의 기사는 다시 기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성채는 히슨 알 아크라드라는 이름이었는데, 그들은 '평화롭게'라는 십자군의 조건 따위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성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공격을 시작하자, 그제야 성채의 문이 열리고 그곳으로 가축 떼를 몰아냈다.
십자군 병사들은 이것에 눈이 멀어 공격은 커녕 가축을 잡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몽 주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까지 가축 잡기에 가담하는 바람에 대장이 포로가 될 뻔한 상황이 되고 만다.
안티오키아 때와 마찬가지로 십자군은 시내에 이슬람교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도는 없었지만 유대교도는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온 그리스도교도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도 이교도다. 그래서 십자군 병사들은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죽였다. 붙잡아 노예로 파는 것조차 그날 그들의 머릿속에는 없었던 듯하다.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에 이교도는 한 사람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두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두 명의 비범한 지후관보다 한 명의 평범한 지휘관을 택하겠다고 한 것은 나폴레옹이지만, 지휘계통의 일원화는 가지고 있는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성직자는 종교인이므로 정신적인 면을 갈고 닦는 데만 전념하고 세속의 자산 등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중세의 가톨릭회는 신도들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재산, 이 시대로 말하자면 토지를 소유하는 데 무척 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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