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3,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3(1판 8쇄)
결국 살라딘은 티루스 공략을 단념했다. 진영을 물리고 철수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행동 없이 그대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하틴 전투' 당시 포로로 잡았던 예루살렘 왕 기 드 루지냥도 석방해준 것이다. 장점이라고는 잘생긴 외보밖에 없고 전투 지휘능력은 완전히 바닥인 이 남자를 풀어준 것은, 그가 돌아감으로써 그리스도교측의 단결에 금이 갈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실제로 그렇게 돌아갔다.
그러나 상대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하는 일신교끼리 격돌한 싸움이다. 양쪽 다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이고, 설령 죽임을 당한다 해도 순교자가 되어 승천할 따름이라고 믿었다.
중세는 '역량'보다 '혈통'이 중요시되는 시대였다. 그랬기에 혈통보다 역량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온 듯한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성탑의 방에 유폐된 리처드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런 나날이 대략 얼마 동안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던 음유시인 블로델이 리처드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다. 게다가 들려오는 노래는 그가 아코에 있던 시절 리처드를 위해 만들어 그의 앞에서 직접 불렀던 노래였다.
리처드는 이 여정 도중에야 비로소 살라딘이 1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금만 더 성지에 머물렀다면 성도를 수복할 수 있었겠다며 아쉬워하는 솔즈베리 주교에게 리처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살라딘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을 테니 장수하지 않았을가, 라고. 이런 대범함 역시 리처드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그러나 제5초 십자군이 막을 내린 직후 로마로 돌아온 펠라조에게 책임을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2차 십자군이 실패한 후, 원정을 선동했던 수도사 베르나르두스가 어떤 추궁도 받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성직자의 가장 큰 임무는 신의 뜻을 신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라는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신이 오류를 범하지 않는 한 그 뜻을 전하는 성직자도 오류를 범할 리가 없으며, 설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신앙심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여겼다.
'맘루크'는 일반적인 의미의 '용병'과 다르다. 노예시장에서 팔려 병사로 육성된 남자들이다. 따라서 출신부족은 다양하지만 '전戰노예'라는 뜻의 '맘루크'는 어쨌든 무기를 받아 싸우는 것이 존재의 전부인 이슬람교도였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끊임없는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이었다.
반면 그리스도교도 기사는 신을 위해, 주군을 위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경하는 여인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였는지 귀차르디니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2백 년 후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한 이탈리아인은 이렇게 말했다.
"현실주의자의 잘못은, 상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생각해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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