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매뉴얼, 제더다이어 베리, 문학동네, 2014(1판2쇄)
사물도 기억을 한다.
문의 손잡이는 누가 자신을 돌렸는지, 전화기는 누가 자신을 쥐었는지 기억한다.
총은 제일 마지막으로 발사된 것이 언제이며 누가 발사했는지 기억한다.
탐정은 사물의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사물에게서 들을 말이 있을 때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
단어로 만든 얼룩인 듯 탐정 회사의 문서 보관소들에 영원히 남아 그의 서기 경력을 더럽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11월 12일 사건. 마음속에서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들여다보았지만 정작 그곳에 그런 기억은 없다는 사실에 한기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런 느낌은 손끝의 지문 사이사이로 스며든 잉크 얼룩 같다. 이 얼룩을 지워보려고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질문에는 질문으로 대답하라. 거짓말이 들통 나면 다시 거짓말을 하라.
다른 사람이 진실을 털어놓게 만들기 위해 당신이 꼭 진실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걸 잊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쉬웠다오. 나는 탐정 회사 최초의 서기였어요. 오랫동안 유일한 서기로 일했죠. 나는 내게 넘어오는 온갖 정보를 잘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기억법을 만들었어요. 마음속에 가상의 궁전이랄까 문서 보관소를 여러 개 만드는 거예요. 내 상상 속에서 보관소들은 일종의 건축물이었어요. 그때는 무게감까지 느껴졌다니까요. 건축물을 지탱하는 것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휘어지고 삐걱거리게 되었어요. 나는 벽돌 한두 개를 느슨하게 뽑아 두기만 하면 되었죠. 그러면 나머지는 알아서 무너질 테니까요."
신문 과정은 당신이 용의자와 한 방에 단둘이 있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용의자에게 신문을 시작할 즈음이면 당신은 이미 답을 전부 알고 있어야 한다.
"사실들, 죽은 사실들, 죽은 사실들로부터 억지로 뽑아낸 모든 질문들, 질문의 종착역으로 이어진 모든 조사의 길, 대답과 대답에 대한 대답들, 길이나 온 세상의 끝. 그래요. 가끔 이미 세상이 끝장나서 창문마다 커튼이 쳐 있고, 별들은 활활 불타올라 작고 검은 구슬이 되고 달은 더 이상 이지러질 수 없을 정도로 이지러지고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재로 돌아갔는데 나만 남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하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당신이 지금 덫을 놓는 게 아니라면 지금 하는 일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일 터. 이 두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바로 덫의 달인이라는 증거다.
유능한 탐정은 모든 것을 알려고 한다.
하지만 위대한 탐정은 끝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만 안다.
칼리가리는 카니발 사람들에 대해 늘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모두 집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야. 그러니 집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누구든 우리 이웃인 거야.'
"현대의 탐정은 보상으로 진실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벌을 받을 때 진실을 알게 된다. 만약 수수께끼를 따라 그 추악한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자신이 없다면 어둠의 가장자리에 서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만족하라."
내가 당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사실
당신이 보는 것도 당신만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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