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라 켄야, 안그라픽스, 2010(초판 2)

 

 

 

 

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얗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을 찾아서는 안 된다. 하얗다고 느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백이라는 감수성을 찾음으로써 우리는 평범한 백보다도 더 하얀 백을 의식할 수 있다.

 

 

 

 백은 현실 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백을 보고 백을 접한 것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현실 세계의 백은 오염되어 있다. 그것은 백을 지향한 흔적으로서만 존재한다.

 

 

 

 종이는 인쇄 미디어라고 불린다. 전자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특히 이런 표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매개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인 전자 미디어와 달리 종이에는 '미디어'라는 개념으로는 언급할 수 없는 성질이 있으며 거기에 종이의 본질이 있다.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가각형

 

바로 앞의 '하얀 사각형'보다 새로운 '하얀 사각형'쪽이 더 하얗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각형 안에서 탄생하는 다음의 사각형은 더욱 하얗게 느껴진다.

 

 

 

 책은 사각형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이 사각형의 공간 안에 언어를 어떻게 접어서 수납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언어는 시간을 따라 하나의 선처럼 연속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언어를 삼중주처럼 구사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더 복잡해지겠지만 현재까지의 인간의 발성 능력에서 언어는 솔로 악기처럼 단선으로 구사된다.

 

 언어를 문자로 치환할 때에도 하나의 연속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한정된 공간에 끈처럼 선적인 언어를 접어 넣는 것이 책이라는 그릇의 구조이다.

 

 

 

꽃은 들에 피어 있는 들꽃처럼

숯은 물이 끓을 정도로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빨리 마시고

비가 내리지 않아도 우산을 준비하며

손님을 최대한 배려한다

 

 

 

 독창성이란 엠프티너스의 각성 능력, 즉 질문의 질이다. 독창적인 질문이야 말로 '표현'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하며 거기에는 한정된 해답 따위는 필요 없다. 그것은 이미 수많은 해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얀 종이에 기록된 것은 다시는 본디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오늘날, 날인을 하거나 사인을 하는 행위가 의사 결정의 증거로서 사회에 유통되고 있는 배경에는 하얀 종이 위에서 정정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사고 경로가 탄생했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는 언뜻 개인적인 언어의 집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의 본질은 오히려 불완전함을 전제로 한 개인의 집적 너머에,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식 같은 것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 인터넷을 개입시켜 사람들 각자가 생각한다는 발상을 초월하여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생각한다는 상황이 탄생하고 있다.

 

 

 

 재능 있는 수많은 사진가들이 앞 다투어 꽃을 촬영하는 이유는 꽃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대상물을 아직 아무도 포착하지 못한 이미지로 포착하고 싶다는 충동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이시모토 야스히로의 꽃사진 또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꽃 사진을 통하여 우리는 꽃의 이미지를 미지의 존재로 갱신할 수 있다.

 

 

 

 자연은 이 절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구조물을 하나하나 벗겨내듯 풍화시켜 왔다. 그 결과 나타난 예스럽고 담백한 풍정을 사람들은 사랑하고, 청소를 거듭하면서 그 아름다움이 끊이지 않도록 유지해 왔다.

 

 2층으로 이루어진 긴카쿠는 이 절의 중심적인 건물로, 그 아래층을 '신쿠덴'이라고 부르며 2층을 '초온가쿠'라고 부른다. 초온가쿠에는 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이 절의 청소나 손질은 담당하는 사람은 정년을 맞이하는 날에 단 한번, 초온카쿠에 오를 수 있다.

 

 초온카쿠에서 정원을 내려다본다. 긴 세월에 걸쳐 청소를 하고 자연을 불러들이고, 그리고 자연의 침식으로부터 지켜 온 정원이다. '은모래가 깔린 물가'라는 의미에서 긴샤단이라고 불리는 만큼 다다처럼 펼쳐져 있는 하얀 모래 위에 파도가 치는 듯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 달빛에 비친다. 그 색은 숨이 막힐 듯이 새하얗기만 하다.

 

 

 

 잠에서 깨어 정원을 보니 눈이 쌓여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부터 눈의 기운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조용히 세상에 쌓여가는 비밀스런 퇴적감을, 신체의 어느 부분이 감지한다. 창문을 열자 다른 세계가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세상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지니고 있다. 수증기는 공기 속의 먼지를 핵으로 삼아 눈의 결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다.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내려와 세상을 덮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