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로니 구멍의 비밀, 하라 켄야, 안그라픽스, 2013(초판)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저명한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마카로니를 설계한다. 조개, 리본, 소용돌이, 알파벳 등 그 베리에이션은 풍부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찍이 일본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다수 동원해서 밀라노에서 <건축가들의 마카로니 전람회>를 개최한 경험이 있다.

 

 

 

 직립보행으로 해방된 손에는 인류와 도구 이외에 또 다른 이미지의 원형이 깃들어 있다. 자유로워진 두 손을 합치면 작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인류의 조상은 이것으로 물을 퍼서 마셨다. 즉 거기에는 '그릇'의 시초가 존재하는 것이다.

 

 

 

 곤봉과 그릇. 세상을 가공해 변용시켜가는 도구와 무엇인가를 보존하고 축적하기 위한 도구.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서 창조하고 진화시켜온 도구는 이 두 가지 계통으로 집약할 수 있다.

 

 

 

 아마 화장실이라는 것도 '처리'가 아니라 '행위'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장치로 변할 것이다. 언젠가 틀림없이 그런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에서 탄생한 용기와 닭에게서 탄생한 식품은 공장에서 만난다. 식품이 용기에 주입되고 얇은 비닐 봉투에 담겨지면서 마침내 '마요네즈'라는 제품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광고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깨끗한 영상과 광고 문구가 야채를 먹는 즐거움을 선전한다. 그 기세에 눌려 마침내 운명의 식탁에 오른다. 접시 위에 놓여 있는 야채에 뿌려지면서 드디어 마요네즈의 일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연출한다. 이 순간을 어떻게 연출하는가 하는 것은 바로 그 구멍의 모양에 달려 있다.

 장대한 여정을 거친 끝에 '!' 하고 짜여나오는 작은 결말. 승부의 순간이다. 정말 허무한 결말이지만 모든 일은 이런 식으로 순간에 좌우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디자인은 마요네즈의 구멍 같은 것이다. 생산이라는 원대한 행위의 마지막 국면에서 인류의 작은 행복을 위해 작은 연구를 한다. 정말 작은 연구지만 그 작은 연구를 통해 결과물은 품격을 갖추기도 하고 쓸모 없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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