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이 미즈마루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안자이 미즈마루, 한겨레출판, 2015(초판 2)

 

 

 

 

 

미즈마루 씨는 내 속에 잠재한

'세상에 도움은 전혀 안 되지만,

이따금 저쪽에서 멋대로 불어오는,

그다지 지적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종류의 별난 무언가'

긍정적으로, 동정적으로, 컬러풀하게 이해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 속에도 같은 정신 영역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따금 그렇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한테는 소울 브라더 같은 사람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우사기오이사-프랑스인> 에서 2007.4

 

 

 

CD에는 저와 무라카미 씨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는 그의 목소리를 '백금 목소리'라고 하죠. 참고로 그는 기름에 튀긴 듯한 글씨를 쓰지요(웃음).

 

 

 

커티삭,

커티삭 하고,

입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다 보면

그건 어느 순간부터

커티삭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이미 초록색 병에 든

영국산 위스키가 아니라

실체를 알아버린

꿈의 꼬리 같은 모양의

한때 커티삭이었다고 하는

단순한 단어의 울림일 뿐이다.

그런 단순한 단어의 울림 속에 얼음을 넣어 마시면

맛있지.

 

* 커티삭 광고

  무라카미 하루키 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딩>에서.

 

 

 

 

 왜냐하면 의미를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슬로보트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과적으로 아주 재미있는 어긋남 같은 게 가능한 사람은 있어도, 계산해서는 절대 못 하죠. 그림은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그래도 트릭 같은 걸로 얼버무릴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삽화나 그림은 트릭이 없으니까요, 그죠.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를 보면 그런 계산에 빠진 듯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 건 딱 보면 알잖아요.

 

 

 

어떤 것이든 내가 있으면

어떤 느낌으로든 내 것이 나올 것이다.

그런 느낌이란 것은 -

- 안자이



 

 

신타니: 그리고 되풀이해서 그리면 잘 그려지는 것이 싫다고도 했었지. 교토에서 펜촉을 바꿀까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을 때, 미즈마루는 가늘고 둥근 펜으로 그렸는데, 바로 바꿀 수 있다더군. 펜에 익숙해져서 생각대로 선이 그려지면 재미없다고. 난 그때 우연을 믿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고 할까, 철학적인 얘기여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신타니: 가벼운 건 말이지, 미즈마루는 의식적으로 그림에서 설명을 빼려고 했기 때문이지.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 선을 지워버려. 그걸 감각으로 할 수 있는 힘, 즉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어.

 

 

 

 미즈마루 씨가 유유히 마이페이스로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즈마루 씨가 지향했던 '좋은 그림'. '잘 그린 그림'이나 '대단한 그림'이나 '훌륭한 그림'이 아니라, '좋은 그림'이란 어떤 그림이었을까?

 미즈마루 씨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미즈마루 씨는 자신이 "좋네." 하고 생각하는 그림을, "좋네."하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려서, "좋네."라는 생각이 들 때 마무리했습니다. 항상 그랬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고민할 것 없다."

 

 "다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주세요.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을 찾으면 됩니다. 찾거든 그 소중한 것을 위해 노력하세요."하는 대사를 소개해주시며,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하세요. 자신다워지는 동시에 행복으로 이어질 겁니다."라는 말씀을 곧잘 하셨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몸이 좋은 실업자'. 어쨌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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