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안개 낀 아침 7시 영어학원을 가는 길이었다.
수험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두툼한 후드를 휘어진 지붕처럼 덮어쓰고 신호등 앞에 서있었다.
내가 신호등 앞에 거의 다다른 찰라
여학생은 두껍고 힘겹고 답답한 표정의 얼굴을 부수고 그 속의 아기 같고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꺼내 입을 보이며 활짝 웃었다.
내 뒤에 따라오던 여학생이 그녀가 기다리던 친구였던 것이다.
아직 어린 학생이 대체 왜 아침 7시부터 시내 한복판에 나와 저렇게 암울한 표정을 짓고 서있어야 하는지도
(언제까지 그런 세상일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함께 학원에 갈 친구 한 명의 등장으로 저렇게 행복해지는 모습도
어느새 이해하기 힘든 나이가 되었다.
학원을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며,
동지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함께 일하는 엇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을 회사 앞에서 마주친다면
우린 과연 서로에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해보았다.
출근길 로비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하루 업무의 시작을 '엘리베이터를 기다림'이라는 시간낭비로 시작하면서,
동일하게 짜증나는 표정의 옆 동료들과 어색한 눈인사를 하면서,
대체 우린 어떻게 이 매일 아침을 저마다 견뎌나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젠 예전처럼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찾을 수도 없고,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옛 친구를 만나도 쉽게 삐걱거림을 느끼고,
친구와 어영부영 한없이 시간을 보내도 아깝지 않다고 느낄 여유도 없고,
그때처럼 별 것 아닌 것에 감동하거나 들떠 잠못 이룰 감성도 없다.
우린 친구를 한없이 믿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에 살면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본 적도 없으면서도 친구에게 배신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하고
은연중에 친구라면 서로에게 이런 정도는 해줘야지 라는 기대와 강요를 갖기도 하고
힘든 세상과 힘든 처지에 부딪쳐 아픈 마음을 친구를 불러 앉혀놓고 풀어내기도 한다.
친구의 개인적 아픔에 요목조목 반박하면 나쁜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저 이해하고 위로하면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면서
그러다 대체 언제까지 내가 얘 감정의 뒤치닥꺼리나 해야 하지? 라는 의문도 가지면서.
내 일생의 단 한 명의 친구를 꼽으라면 2017년의 세상에는 그런 친구가 없다.
내 일생의 친구들은 언제나 과거 속에만 존재했다가 여전히 과거 속에 머무른다.
반면 누군가 내게 너는 누군가의 일생의 친구일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고, 아니다.
옛날, 예전에, 진짜 친구가 뭔지 알고, 진짜 친구가 있다고 믿었던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친구란 적금이나 농사, 기르는 숲 같은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시간에 걸쳐 만들어놓은 좋은 영양의 토양이 나중에 가장 큰 금액의 적금통장,
혹은 이렇게까지 풍성해질지 몰랐던 숲이 되는 것 같다.
그러면 사람은 꽤 뿌듯해지지 않을까.
실제로 쓰지 않을 적금 통장이라도 그 숫자를 보고 있으면 뿌듯해지듯,
남들은 모르는 나의 개인 농장, 개인 숲일지라도, 그곳에 가 서면
지나 온 시간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고 그 풍경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듯.
친구가 그런 존재일수 있음을 우리가 좀 더 어릴 때 배울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부모가 자식을 염려할 때- 친구에게 나쁜 걸 배울까봐, 친구로 인해 손해를 볼까봐,
바보 멍충이처럼 친구에게 이용당할까봐 두려워- 친구를 계산하고 평가하고 관계를 적절히 공정하게 하는
그런 것들만 가르칠 시간에 친구가 줄 수 있는 풍요와 친구가 줄 수 있는 감동과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도 더욱 힘들어질 뿐 쉬워질 기미가 없는 이 힘든 세상에
친구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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