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 세상이 뭐라고 생각해? 넌 이 우주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해?

명료한 질문이라 할 수 없는 이 모호한 질문을 가끔 가까운 이들에게 던지곤 하는데,

명료한 질문이 아니므로 명료한 답을 기대하는 건 물론 아니고

너는 평소 이 세상 혹은 이 우주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혹은 나름 이 세상 혹은 우주에 대한 어떤 독특한 세계관이나 의미, 가치를 정의내려본 적이 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들은(특히 술이라도 몇 잔 들어가고 나면),

세상? 우주? 조또 아니지!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세상이나 우주가 조또 아니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설명이 어딨어 조또 아닌 건 그냥 조또 아닌 거야! 라고 대답하고는 하기도 하고.

어떤 계기나 과정을 통해 그런 결론에 달하게 됐는지, 혹은 그런 생각을 주장하는

근거나 이유가 뭐냐고 물을 경우엔,

그게 뭐~~~가 중요해. 결론은 그냥 조또 아닌 거라고!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굳이 이 질문과 이 답이 아니더라도)

어떤 질문에나 대부분 확고한 본인의 답이 있고, 그 근거나 이유, 과정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면

비슷한 식으로 그냥 이건 그런 거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식으로 조리나 논리 없이 무턱대고 대답할 뿐만 아니라,

조리나 논리나 근거 없는 답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확신에 차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논리나, 근거를 딛고 얻은 결론이나 생각의 경우, 그 논리의 과정이나 근거의 참과 거짓 등

흔들리거나 반박당할 여지가 군데군데 많기에 그 결론이나 생각에 확신을 갖기가 어려워지는 반면,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결국 답은 모호해지곤 한다.)

무논리의 대답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오히려 더 확신에 차서 답을 하고, 목소리도 크다.

논리 자체가 없으므로 그 신념이 흔들릴 여지도 없다.

 

이토록 확고한 신념이나 답을 가지면서도, 정작 근거나 생각의 도출 과정은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 이유는 통찰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어떤 나름의 통찰이 찾아온다.

 

'산다' 혹은  '먹고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기에 수십년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보면 문득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직업에 대해, 사람에 대해, 뭔가에 대해 나만의 통찰이 찾아온다.

이건 두뇌가 있고 정상적으로 생활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당연한 일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찾아온 통찰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더하거나, 검증해보거나,

정확히 이 통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정리하고 반복하며 이성적으로 납득해간다.

혹은 결국 납득이 안가는 통찰이라면 폐기시킨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찾아온 통찰에 대해 그 어떤 생각도 더하거나 빼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어느날 문득 찾아온 이 손님의 정체가 정확히 뭔지, 옳은지 그른지, 옳다면 왜 옳은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이런 통찰을 하게 되었는지, 이 통찰을 통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 스킵해버린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훈련을 평생 한적이 없거나, 

그런 식으로 내 생각을 검증하는 것 자체의 중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혹시라도 내가 잘못 생각하면 어쩌지, 내 생각이 '2017년 인류'의 기준에서 뒤떨어지는 낡은 사고면 어쩌지.

내가 검증되지 못한 생각을 믿고 광신도처럼 떠드는데, 심지어 내 스스로가 그러는 지도 모르면 어쩌지,

그 굴욕과 비참함을 행여라도 내가 행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을 가진 적 없이 살아온 것이다.

그저 내 앞사람, 옆사람, 뒷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내가 학자나 작가나 그런 사람도 아닌데

이정도면 평범한(그래서 적당히 좋은) 거지 뭐. 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 에 있어서 정답은 없고. 통찰 또한 저마다의 것이다.

그러나 통찰이 저마다의 것이기에 설명 없이는 그 사람이 얻은 통찰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설명을 최대한 꼼꼼히 자세히 해도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설명 자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명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충분히 명료하게 설명해본 적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움 없이 큰소리로 자신의 통찰을 통해 얻은 대답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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