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당분간 연애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곤하다고, 쉬고 싶다고.
그말의 뉘앙스를 들여다보면, 휴식기를 갖겠다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에 따라, 연애 또한 큰 범위에서 '감정노동'의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미'와 '노동'을 가르는 기준에는 크게 두 축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돈' 다른 하나는 '자율성'.
대가를 받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냐, 라는 기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것이냐, 라는 기준.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없다는 데에 있어서는 연애는 취미라기보다는 노동에 가깝다.
관계가 유지 되기 위해 의무적 혹은 암묵적 계약에 의해 지키거나 행동해야 되는 것들이 있는데,
어떤 커플의 경우는 연애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간에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점점 없어져 최소한의 것만 남게 되고도 하고(내가 생각하는 긍정적 모델),
어떤 커플의 경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간에 수행해야 하는 항목들'이 점점 늘어나 '과로'를 향해 치닫기도 한다(내가 생각하는 부정적 모델).
그런데 대부분은 저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커플 행동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서로 합의하기위한 논의까지 더해져, 결국 연애가 사람을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일로 변형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누구나 바쁘고 누구나 자기개발을 해야 하며 누구나 수많은 걱정과 함께 누구나 수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갈 때는 더더욱.
(그래서 우리와 흡사하지만 십여년 앞서가는 일본 젊은이들의 NO연애주의가 자연스런 진화과정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토록 피곤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연애를 우린 어떻게 기꺼이 할 수 있는가.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화학적 자극을 끊임없이 받기 때문이다.
운동 자체는 고통스럽고 힘들며 피곤한 일이지만, 운동 할 때 엔돌핀이 분비되어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상대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기꺼이(혹은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동일한 행동을 서로에게 해주기란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해보라.
그런데 문제는 연애가 길어질수록 화학작용의 정도가 약해진다는 것이고. 오래된 연애 또한 오래된 부부처럼.
더이상 핫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더이상 서로가 핫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 누군가가 먼저 경각심을 갖게 되면, 오히려 위기는 더 빠르게 심화될 수도 있다. 이유는 딱히 솔루션 없이, 특정한 결과를 원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예전처럼 다시 핫하게 되는 건 불가능한데, 다시 핫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답을 찾다가,
답을 찾지 못하니까 결국 이런 저런 제약만을 더하게 된다. 더 자주 00하라던가. 더 다정하게 00하라던가. 더 00하라던가.
결국 요구가 는다는 건 불안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증거다. 서로의 사랑에 일말의 의심도 불안도 없다면 딱히 무얼 요구하겠는가. 무얼 그리 바꾸라고 강요하겠는가.
내가 관찰해본 결과, 오래도록 행복한 연애에 성공한 커플은, 핫한 사랑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이동이 자연스럽게 된 커플들이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이란 상대를 간섭하기 보다 지지하고, 구속하기 보다 자유롭게 두며, 스스로 자신의 삶에 몰입하는 가운데 연애가 병행될 수 있는 사랑이다. 소위 말하는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로서, 서로의 이상과 철학 삶에 대한 가치관들을 이해하고 공유하며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놓은 이상적 연애관게의 틀 안에 상대방을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애정하는 것이다.
(성숙한 사랑을 만들기 위한 간단한 행동양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상대방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그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하되, 상대방이 내게 해주기를 강요하거나 기대하지는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사랑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즉 서로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사랑의 행동'을 상대방을 위해서 하되, 상대방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사랑의 행동'을 따르도록 강요하지는 않는 것이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건 너무 공정하지 못한 것 아니냐. 나만 더 많이 해주는 것 아니냐, 라는 생각이 든다면... 갈 길이 참 멀다....)
대부분 사랑의 이상적 모델을 짤 때, 나도 모르게 상대방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부각된다. 내가 이런 감정이 들도록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이런 감동을 받도록 해주면 좋겠어. 내가 매일 웃을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 성숙한 사랑이 되기 위해선 '상대방이 내게 000해줬으면 좋겠어'를 최소화하고, '그냥 너가 너라는 사람 자체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까지 가야된다.
때문에 쉽게 하기 힘든 사랑이며, 때문에 성숙한 사랑이고, 때문에 오래된 커플들에 한해서 드물게 발견되곤 한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사랑의 감정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일종의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이 성숙한 사랑의 형태인가, 그리고 왜 그것이 성숙한 사랑의 형태인가에 대해서.
너무나 오랜 시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말했듯이, 대한민국은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 어른이 되고 늙기까지 어디서도 '성찰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사회다. 맹복적과 과부하와 초스피드로 주어진 레일을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성찰'이라 여기며 가장 많은 시간을 때려 붓는 곳은 그저 술자리이다. 술자리와 연애담,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귀결되는. 그리고 그곳에서 합의하에 귀결된 결론 - 연애란 자고로...로 시작해서 소개팅해줘로 끝나는 - 을 성찰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사랑에 대한 대화란 주로 '00가 00랑 결혼해서 0억짜리 아파트를 샀대.' '00가 양다리 걸쳤대' '00가 여자친구한테 돈 빌리고 000 한지 한참 됐대.' '걔낸 그래서 사귄지 7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결혼할지 안할지 모른대' 에 그친다. 엄밀히 말해 이건 사랑에 대한 대화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런 게 사랑의 대화다.
이별 후 당분간 연애를 안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연애 말미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피로를 느낀다.
피로가 너무 강해 연애의 좋았던 감정 좋았던 기억들이 너무 옅다.
그러다 계절이 좀 바뀌고 햇볕 따뜻하고 바람 잔잔한 날 길을 걷다 벤치에 앉거나, 빨래를 널다가 문득,
연애의 좋았던 감정이 다시 떠오른다.
비로소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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