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1부, 류츠신, 자음과모음, 2013(초판6쇄)
당신 아버지는 “중국에서는 아무리 자유로운 사상이라도 결국에는 모두 ‘탁’하고 땅에 떨어져버리지. 현실의 인력이 너무 무거워”라고 탄신했어.
그녀는 도끼와 짧은 톱을 들고 쓰러진 나무에 가서 잔가지를 쳐냈다. 이 일을 할 때마다 그녀는 거인의 시신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거인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38년 뒤, 예원제는 마지막 순간에 <침묵의 봄>이 자신의 일생에 미친 영향을 떠올렸다. 그전에는 인간의 악의 일면이 그녀의 젊은 영혼에 치유할 수 없는 거대한 상처를 남겼지만 이 책은 인간의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해주었다.
더 깊이 생각해나가자 추론 하나가 그녀를 두렵게 했고 공포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했다. 아마도 인간과 악의 관계는 대양과 그 위에 떠 있는 빙산의 관계로, 둘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빙산이 눈에 잘
띄는 이유는 그저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고, 그것의 실체는 거대한 물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인간 스스로 도덕적 자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 이외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이 생각이 예원제의 일생을 결정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 지구의 생명은 정말 우주의 우연 속의 우연이라고. 우주는 텅 빈 큰 궁전이고 인간은 그 궁전에 있는 유일한 하나의 작은 개미지. 이 생각은 내 후반 생애에 모순된 감정을 심어줬어. 때로
생명은 정말 귀해서 태산보다 무겁게 느껴지지만, 또 때로는 인간이 너무나 보잘것없이 미미하게 느껴져. 어쨌든 삶은 이런 이상한 감정 속에 하루하루 지나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은 늙었지......”
관광객은 자기가 뭘 보러 왔는지도 모른 채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진이나 찍어댔고 참배객들은 관광객보다 많이 가난해 보였고 둔한 지능마저 억제된 상태였습니다.
고독이 거대한 손바닥이 되어 예원제를 짓눌렀다. 그 손바닥에 눌려 작아지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구석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주의 더 고급 문명이 보았을 때 횃불과 컴퓨터, 나노 소재 등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업는 같은 단계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인류를 벌레로 보는 이유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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