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민음사, 2019(1판 51쇄)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바다에서는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부서지는 하얀 파도는 저 아래 사구의 기슭을 깨물고 있다.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애써 가다듬은 기분을 다시 헤집어놓은 것 같아 불쾌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혈관 속에서 무언가가 제멋대로 부풀어오른다. 마치 피부에 들러붙은 모래가 혈관으로 스며들어가 안쪽에서 그의
감정을 깎아내는 것 같았다.
모래 쪽에서 생각하면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확실한 것은 오로지 모든 형태를 부정하는 모래의 유동뿐이다. 그러나 판자벽 하나 건너 저편에서는 여전히 모래를 퍼내는 여자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저렇게 연약한
여자의 팔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거의 물을 휘저어 집을 지으려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물 위에는 물의 성질에 따라 배를 띄워야 마땅하다.
물론 모래는 액체가 아니다. 따라서 부력을 기대할 수 없다. 가령 모래보다 비중이 가벼운 코르크 마개 같은 것도 그냥 놔두면 저절로 가라앉아 버린다. 모래에 띄울 수 있는 배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가마솥에서 중얼거리듯 야채가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쌉싸름한 무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어제도 내일도 없는, 점 같은 마음…….
실제로 선생들만큼 질투의 화신에게 매달리는 존재도 드물다……. 학생들은 해마다 강물처럼 자기들을 타고 흘러가는데, 선생들만 그 흐름의 밑바닥 깊이 박혀 있는 돌멩이처럼 남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여자가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움직여 조금씩 다가왔다. 둥그런 무릎이 엉덩이 살에 닿는다. 잠자는 동안, 여자의 입과 코와 귀와 겨드랑이와 그 밖의 모든 구멍에서 발효된 미적지근한 물 같은 냄새가 사방을 짙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여자는 턱을 내밀고 신음하였다. 수건은 여자의 타액과 입냄새로, 죽은 쥐처럼 묵직하다.
결국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욕망을 채운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육체를 빌린 전혀 별개의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성이란 원래, 개개의 육체가 아니라 종의 관할 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쫓기는 사람처럼 밖으로 나간다. 사고도 판단도 갈증 앞에서는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에 내리는 한 가닥 눈발에 지나지 않는다. 열 잔의 물이 사탕이라면, 한 잔의 물은 차라리 채찍에 가깝다.
근육 사이사이로 석고를 들이부으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노동을 극복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노동을 극복하는…… 그 자기 부정의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
만약 이것이 소리의 파도였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 들려올까? 콧구멍에 부젓가락을 쑤셔넣어 그 선지피로 귀를 막고, 이빨을 하나 하나 망치로 부셔 그 파편을 요도에 밀어넣고, 음순을 잘라내어 위아래 눈꺼풀에 기워 붙이면,
인간이라도 그 정도 노래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잔혹하게 들리겠지만, 잔혹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동물의 체취란 철학 이상의 존재다.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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