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마흔은 아니다. 마흔이 넘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가 3년하고 몇 개월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마흔 셋인 걸까 마흔넷인 걸까.

 

꿈을 꾸었다. 진이 빠지는 꿈이었는데 깨고 나니 그리워졌다.

꿈속에서의 나이는 가늠할 수가 없다. 며칠 전까지는 아주 어린이였다.

 

근래에는 계속 꿈에서 깨기가 싫었다.

꿈에서 깨어 현실이라는 아바타를 착용하는 일이 즐거웠던 적이 평일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 요즘에는 그 싫음이 좀 다르다.

그 전까지는 직장, 스트레스, 경쟁, 과로, 피로, 인간관계, 반복, 피부, 노안, 뱃살 그리고 지겨움 이런 것들이었다면

요즘은 아바타를 착용할 때마다 아직 맵이 완성되지 않은 경계선으로 출장 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은 '살아보진 않았어도 대략 그려지긴 했던 미래를 향해' 가보자, 라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는다.

주변엔 롤 모델도 없고, 미리 계획해둔 것도 없고, 조언을 청할 사람도 없고,

책 속 주인공들은 대략 이맘때쯤이면 모두 황폐해진다.

 

내가 가족을 만들지 않기로 선택했던 때로부터 대략 이십 년이 흘렀고,

여전히 납득이 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만, 그 사이 내가 그려봄직한 미래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늘어날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여전히 내가 초기 데이터 중 일부일 지도.

 

나는 직장을 몇 년이나 더 다닐 것이며, 그러다 무엇을 할 것이며,

연애나 인간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생활은 어떻게 할 것이며,

심지어 스무 살 이후로 계속되어온 식당밥 생활은 유지될 것인지, 

혹은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오듯 나 또한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세련된 중년인으로 거듭날 것인지.

 

지금까지도 고민은 늘 있었으나 어떻게 보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독립된 생활이 가능하고 건강한 인간관계가 가능할 정도'의 능력과 자격을 성취할 것인가.

하지만 지금부터는 완전히 다른 고민으로 나뉜다.

대부분은 지금부터 가족에 대한 고민 혹은 가족 공동체를 부흥시키기 위한 고민의 양이 늘어날 것이고,

나는 혼자서도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한 고민의 양을 늘려야 할 것이다.

 

오션월드에 가면 물살에 휩쓸려 가며 즐기는 장소가 있다. 

많은 아이들과 연인들과 그리고 내가 휩쓸려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들 웃고 물장구를 치는데 나 혼자 떨떠름한 이유는

그들이 올라탄 시간과 내가 올라탄 시간이 같지 않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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