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원하는 단어가 인출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머릿속 생각들을 정확한 단어를 써서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머릿속 생각의 청자는 나밖에 없으므로 내가 무슨 얘기를 전하고 싶은지 나는 이미 안다.

따라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워프 패스처럼

생각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연결하는 정확한 단어들을 생략하고

띄엄띄엄 이런 게 이래서 이렇게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오늘도 왜 그렇게 식의 알맹이 없는 수사어만 쓰기 일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제 했던 생각의 패턴을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한 것 같은 일 년을 보내곤 한다.

Fact가 담긴 단어들을 모두 오려낸 신문을 몇 년째 정기구독하는 중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몇 년 전 같다.

8월인데 아직도 올해가 몇 년도인지 헷갈린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고 나면, 며칠이 지난 것 같은데 왜 일 년이 지났냐고 따지게 되거나

발전은커녕 올해도 또 퇴보한 자신에 절망하게 된다.

10대, 20대, 그리고 잘하면 30대에도 생각의 성장을(그게 몇 센티미터의 성장이든) 느끼며 살아왔고,

그게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을 줬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생각을 좀 할라 치면 숨이 차다.

수십 년 째 나만 바라보고 떠들어대는 목소리에 지쳐 명상을 배우고 있다.

솔직히 이런 상태로 후배들에게 뭘 알려주고 뭘 가르친단 말인가.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제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사이즈와 질감의 단어가 도통 프린팅 되지 않아서

덩어리 진 찰흙 같은 관념만 툭, 툭, 화면에 떨어뜨려 놓고 당황스러워하는 중이다.

독후감이야 정 안 써지면 때려치우면 되는데,

문득 마흔이 넘어서도 독후감을 쓸 일이 생긴다는 게 오묘하다.

 

회사에서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서 원하는 사람에게 책을 구입해주고 독후감을 쓰라고 한다.

물론 독후감 수상자에겐 소박한 선물이 있다.

 

나는 문득 독후감의 역사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독후감 잘 쓰는 법, 복사 방지 프로그램 등만 검색되고 역사는 모르겠다.

나는 독후감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알까.

 

생각해보니 학창 시절에는 책을 읽지도 않고 독후감만 써서 내기도 했다.

읽고 싶지 않은 책이었고, 남는 시간에 만화책을 봤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독후감 쓰는 방학숙제는 있을까?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만화책을 보고 독후감을 쓰는 건 학교로부터 거절당할까?

 

어? 잠깐.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켄타로를 추모하는 의미로 올여름엔

베르세르크 전집을 구매해서 경건하게 다시 읽어야 한다."라고

머릿속 생각이 아주 정확한 단어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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