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평범한 삶의 주기는 '가족에서 가족으로'이다.
태어나서부터 결혼 전까지는 한 가족의 아들 혹은 딸로서 존재하다가,
결혼을 통해 분가하는 순간 다시 다른 가족의 남편 혹은 아내로 귀속된다.
일종의 '환승'이다.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 혹은 배우자 혹은 엄마 혹은 아빠로서가 아닌
오로지 '나'로서 삶을 꾸려가는 독립된 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의 삶의 주기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가족)으로부터 독립한다.
그 후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전까지는 독립된 삶의 시기를 갖는다.
연인이 섹스를 위해 모텔을 찾아가는 문화가 미국엔 없고,
한국의 모텔이 섹스를 위한 장소로 자리매김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이러한 '가족에서 가족으로' 환승하는 삶의 과정을 어려서부터 좋아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스타일에 간섭하거나, 권위를 이용해서 옳고 그름을 강제하는 게 싫었다.
나는 어렸을 때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배를 바닥에 대고 밥 먹는 걸 좋아했는데... 왜 그게 그렇게 못 견딜 일이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독립된 삶이 궁금했다.
고등학교 졸업만을 기다리다 졸업과 동시에 집을 나왔다.
서울 집을 벗어나 춘천에서 자취를 시작하던 촌스런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방바닥에 엎드려서 밥을 먹었다. 정확히는 라면일 때가 더 많았다.
인생에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한 시기 살아보고
또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삶을 한 시기 살아본 뒤
다시 가족 구성원으로의 삶이 좋을지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갈지 선택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삶의 한 시기를 살아보고
다른 나라에서 삶의 한 시기를 살아본 뒤 어느 나라에서 나머지 삶을 살아갈지도 선택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아직 해보지 못했다.
해봐야 납득하는 스타일이고,
재빠르고 화려한 엘리트 코스의 삶은 진작에 나와 안 맞음을 간파했다.
그러다 보니 삶의 단란 단락이 남보다 좀 늦는 경향이 있다.
졸업도 늦고, 취업도 늦고, 연애도 늦고, 경력도 늦어서 이런 식이면 수명이 모자라다.
올해 기준, 가족과 함께 산 시간보다 혼자 산 시간이 몇 년 더 길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록 경신이다.
평생의 대부분을 가족이라는 따뜻한 관계망 속에서 보내는 건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그 경험은 많이들 하고 있으니까 나는 다른 편의 균형이다.
가족과 가족 사이로의 이동을 환승이라고 하면
기차를 타고 온 거리보다 기차에서 내려 달려온 길이가 더 길다.
혼자 탄 오토바이 같은 거겠지. 흙먼지가 일어난다.
혼자 사는 것에는 장점이 많다.
일단 구성원들과 타협할 일도 없고, 굴복할 일도 없다.
과장하자면 내가 통치하는 조그마한 왕국의 왕이다. 신하이기도 하고. 국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법들을 만들었다 수정하거나 폐기하기도 한다.
내 집의 신하(바로 나)를 위한 재정확보와 환경 개선에도 투자한다.
물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왕국 자체에서 쫓겨난다는 게 함정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금전적 문제.
연애를 하면서 깨달은 건,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둘 사이에 권력 구조가 생기고
둘 사이에도 정치를 하려고 하며, 그 기저에는 상대를 컨트롤하려는 욕망이 너무나 크다는 점.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거의 본능적인 것 같다.
기왕이면 '우리 둘'이 '내 기준'에 맞춰 지낼 때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 둘'이 '네 기준'에 맞춰 지낼 수 없는 이유는 내 기준이 더 옳기 때문이다.
가치관, 성격, 성향, 습관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한쪽이 져주지 않는 이상 명확한 판결이 나지 않는다.
이때부터 싸움과 곪음이 시작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인된 '판사'가 없기 때문에, 판사 없는 법정 싸움이 벌어진다.
여초 커뮤니티에 둘의 사연을 올려 지지를 받으려는 전략을 펼치는 변호사가 있고(다수의 논리를 택했군),
권위를 지닌 학자나 유명인의 글귀나 사례를 빌려 전략을 펼치는 변호사가 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나와 같은 입장이올시다)
결국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싸움이고, 안타깝게도 '상호 합의'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유구한 갈등과 해결법 모색의 과정 속에서 파생된 지혜가
'무조건 여자 말 들어'인데, 공동체를 건사할 때는 확실히 한국 여성의 현실성이 빛을 발한다. 재미는 없지만.
또 워낙 과거 한국 남자들의 현실관이 개차반이기도 했고.
나처럼 옳고 그름을 강박적으로 따지거나, 이상한 생각 유희를 즐기거나, 스스로가 독특하다는 착각을 포기 못하고
엎드려 밥 먹는(사실은 라면) 것에서 정서적 위안을 찾는 사람은 어쩌면 가족이 맞지 않을 수 있다.
내가 30대 때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 구구단처럼 나오던 상대방의 대답이
"즐기기만 하려고?"였다.
난 결혼이 더 즐거워지려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다들 억지로 하는 거였을까?
시대가 참 빨리 변하는 게 요즘은 그정도로 무개념 발언하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구구단도 바뀌는 법이다.
아, 그런데 그런 건 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오토바이를 오래 탔더니 기차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프란시스 맥도맨드(Frances Louise McDormand) 주연,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가 떠오른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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