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온라인 강의를 할 일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업계의 인기가 완전 끝난 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시작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형태로 다시 한 번 이 업의 전성기가 올 거라 나홀로 조심스레 예상한다.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문득 청중 한 명의 질문이 생각난다.
"평소의 하루 루틴을 알고 싶습니다."
질문이 아니라 요구인가? 어쨌든.
오늘 루틴.
6시 10분에 일어나서 이만 닦고 바로 출발
7시 수업 수영강습 : 주 3일. 주 5일 도전한 적이 있는데 바로 몸살이 왔다. 주 2일은 간단한 홈트레이닝으로 대체.
8시 30분 출근 완료 업무 시작
12시 30분까지 따로 휴식 시간 없이 집중해서 일하고 : 오전 중 마무리하겠다고 미리 계획한 파트인데 서둘렀음에도 불구 조금 덜 마무리됐다
12시 30분부터 50분까지 구내식당에서 혼자 점심 : 먹으면서 덜 마무리 된 부분 머릿속으로 완성
이 닦고 정신 추스리고
1시 10분부터 다시 집중 : 가급적 20분 안에 오전 중 마무리 지으려 한 분량 매조지.
1시 30분부터 오후 계획한 일 중 파트1 탐색 : 내가 원하는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 미리 생각해놓은 방향을 탐색 고민해보는 것
2시 30분부터 오후 계획한 일 중 파트2 탐색 : 파트1의 탐색에서 아이디어 무산, 다른 방향을 탐색하며 아이데이션
3시 30분부터 오후 계획한 일 중 파트3 탐색 : 다른 방향을 탐색하며 아이데이션
4시 40분부터 5시 50분까지 탐색한 아이디어들 검토 및 폐기. 문제점 파악. 다른 탐색 방향 모색. 다른 자료 검색.
50시 50분 집으로 이동 시작 6시 30분 집 도착 : 일부러 회사 가까운 곳에서 자취(회사를 옮기면 항상 집도 옮긴다)
7시까지 샤워.
9시까지 야근 : 회사에서 사 온 바나나, 견과류, 그리고 저녁으로 먹는 가루분말 파우더로 워킹 디너.
10시 30-40분까지 미드 or 유튜브 or 영화 or 독서하며 휴식.
11시 전에 취침.
이게 많이 바쁘지 않고 적당히 일이 있을 때의 하루 루틴이다.
오늘은 미팅이 하나도 없어서 회의에 들어간 시간이 없다.
내일 아이디어 회의가 있어서 오늘 야근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만들어놓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요즘 같은 보통의 업무량이라면, 가급적 오늘 같은 야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4-5년 전부터 생긴 습관인데,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있는 시간"과 "일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시간"은
하루 업무 시간에서 뺀다.
그랬을 때 하루 목표는 완전히 집중해서 일한 시간 7시간 이상인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퍼포먼스다.
보통 7시간 집중해서 일하면 머리가 아프거나 기력이 바닥난다.
그러면 시간적으로 최소의 충전이 필요하거나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데, 저녁을 나가서 먹고 오거나,
업무 공간을 바꾸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과거에는 사우나를 연간 끊어서 짬짬이 샤워를 하고 왔다. 유레카!)
월요일 출근해서 금요일 잠깐 집에 갔다가 다시 토요일 출근해서 일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퍼포먼스는 유지'하면서 '퇴근'을 할 수 있을까를 절실하게 고민했고 그런 시기가 반영된 결과다.
아, 그 당시 팀장이 한 말 중 아직도 치가 떨리는 말이 있는데 "아프지 않으면 그날 일 안 한 거야!".
실제로 그때 매일 아팠다.
우리 일은 가장 심플하게 표현하면 오티 받고 각자 아이디어를 내서, 미팅을 통해서 승부!
이기 때문에 대부분 회의까지 아이디어를 준비할 동일한 시간이 주어진다.
안타깝게도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더 좋다.
그래서 4-5명의 아이디어들 수십 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하고,
그러면 남들보다 많이 일하는 게 유리하다.
1원칙을 '언제나 항상 올웨이즈 남들보다 좋은 아이디어'에 둔다면 집에 가긴 글렀다.
그래서 이 업은 야근 많기로 유명한 업이 되었다.
그 한참 압력밥솥처럼 매일 쪄지던 시기에 몸으로 깨달은 건,
"새벽 4시까지 일해도 집중한 시간이 7-8시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였다.
바꿔 말하면 몇 시까지 일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산성 높은 시간이 몇 시간이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봤자 PT를 한다거나 절대 업무량이 비상식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다 무의미해지긴하지만.
암튼, 생산성 높은 위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선 대단히 드라이dry한 라이프를 감내해야 한다.
소위 주말 빼고는 사적으로 즐거운 시간은 최소화해야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난 잠도 많다),
수면시간과 컨디션이 확보되어야 하루 7시간 이상 집중이 가능하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마음이 뜬 날은 하루 한두 시간 집중도 어렵다. (물론 눈과 손과 머리가 일은 계속 하고 있지만 스파크가 없는 상태다.)
회의가 많이 잡힌 날과 없는 날을 미리 생각해서 회의가 많은 날은 내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고 계산해야 하고,
감안해서 회의가 적은 날 평소보다 많은 업무 분량을 미리 뽑아야 한다.
또 몰입해서 아이디어 탐색에 깊이 빠져들 때 사용하는 뇌와 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순발력을 발휘해서 디벨롭하거나
섞거나 정리하는 뇌의 사용이 다르기 때문에, 회의를 마친 뒤 전자의 일에 몰입하려면 어려움이 있다.
회의를 최대한 앞쪽에 몰아서 끝내고, 뇌의 기어를 바꾸는 텀term을 시간적/이미지적으로 가진 뒤, 내 업무에 몰입하거나.
혹은 내 업무에 몰입한 뒤 털어내고 회의에 집중해야 한다.
내 업무에 몰입하던 관성이 있는 상태에서 회의에 들어가면 또 남의 생각을 떨어져서 보거나 회의 중 생산성을 높이기에 방해받기도 한다.
노는 건 주말에 집중하고, 주말에 출근하지 않기 위해 평일에는 일에 집중한다.
주 5일 중 노는 날이 섞이면 '5일 한 세트' 기준의 몰입에 영향을 미친다.
숙취나 수면 부족은 치명적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쭈욱 이어지는 집중의 이미지가 깨진다.
실제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루틴을 이어서 집중하다 보면 그중에서도 최고로 집중되는 날이 하루 이틀 생기는데
예를 들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축구경기를 하다 보면 그중 하루 유독 경기력이 잘 나오는 날이 있다.
결국 애초부터 5일을 계속 집중해야 하루하루의 집중 평균치가 높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트랙 훈련을 한다는 이미지, 한 주에 걸쳐 계속 빌드업하는 이미지이고
주말에는 제대한 말년 병장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과 일요일을 축축하게 놀다 보면 다시 그렇게 새로운 일주일을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회사란 곳이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어서 월요일이면 또 마음가짐이 바뀐다.
야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와서 샤워를 한 뒤 밤 12시 넘어 맥주 한 캔 마시며 창밖 보면서 감상에 젖어 분위기 잡는 게 소소한 기쁨이었는데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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