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의 히어로를 영화화한다면, 주인공이 갖고 있을 슈퍼파워는 "이레이져"일 것이 분명하다.
사십 대가 되면 급속도로 많은 것들을 상실하게 된다.
근육, 하체근육, 머리카락, 피부, 재생능력, 피로회복능력, 시력, 정의감, 열정, 애정, 우정, 의리, 생동감,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상실은 "용기".
가끔씩 출근 전 샤워를 하며 거울을 볼 때면, 이러다 언젠가 집밖을 나서지 못하는 순간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전하는 용기, 맞닥뜨리는 용기, 비겁하지 않을 용기, 시험해볼 용기, 들이대는 용기, 비굴하지 않을 용기, 나다울 용기를 지나
사람을 만날 용기, 부대낄 용기, 용서할 용기, 자유로워질 용기, 결심할 용기, 오래전 나와의 약속을 지킬 용기 등
용기란 용기는 다 빠져나간다.
이런 상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거짓 계량"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도 모르게 남은 용기를 이미지화하게 된다.
그리고 내 상상 속에서 내 안에 남은 용기는 46퍼센트 정도이다.
20대 때는 한 88퍼센트.
바꿔 말하면 20대 후반에 내가 한 짓들을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할 엄두가 안 난다.
가진 게 많아진 것일 수도 있고, 잃을 게 많아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더 당당해져야 할 텐데 왜 더 소극적이 되는 걸까.
두 달 전부터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평 K26에 갔다가 이퀄라이징이 안 되서 비참했다.
마흔이 넘어 부비동의 유연성도 잃어버린 걸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평생 이퀄라이징을 해본적이 없고 그러므로 자연스레 퇴화되었을 뿐이다.
선천적으로 유연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얼굴에 표정이 없기도 하고.
다만 동일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나 자신의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대학교 교양체육으로 처음 수영을 배울 때가 생각난다.
능숙한 반, 그래도 좀 하는 반, 초급반, 그리고 특수반으로 나뉘었는데 특수반이었다.
초급 중에서도 물에 안 뜨는 몸.
하지만 그때 그 상황에 대한 내 반응은 되게 괜찮았다.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이제 잘하게 될 거고, 노력할 거고, 반복할 거고.
상황은 그때와 동일하고 해답 또한 그때와 동일하다. 다만
그때처럼 즐겁고 그때처럼 생기가 돌지 않을 뿐.
'상실의 시대'는 사춘기를 지나 대학 생활 때까지 나의 정서를 많이 대변하던 소설이었는데
진정한 상실의 시대는 마흔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음은 잃을 게 없으므로 부자유 속에서도 자유로웠는데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마흔은 왜 자꾸 주저앉으려는 걸까.
그때 주어진 것 이상으로 들뜨게 했던 20대의 에너지는
마치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돌아와 주어진 것 이상으로 가라앉게 한다.
이 에너지를 밖으로 쏘아낼 수 있다면
나는 세계의 빌런들을 주저앉히고 숨어 울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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