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kind KOREA, VOL16, 나에게 몰입한다는 것

 

 

 [나의 몰두]

 얼마 전 강의를 하러 갔다. 강사 대기실에서 평소처럼 김밥을 먹었다. 대개는 길거리에서 먹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공간을 찾는다. 문득, 내가 스무 살 이후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김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유와 초콜릿.

 

 나는 진로 상담을 청하는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만 말한다. “저(나)는 지금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어요. 진로 고민은 죽으 ㄹ때까지인 것 같아요.” “그냥 무조건 여행을 가세요.”

 

 게다가 전 세계에 유례없는 난민에 반대하는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왕창 등장했다.

 

 몸의 통증과 기진은 말할 것도 없다. 마감 인생으로 생활은 불규칙하고 키보드 노동으로 손목과 어깨는 망가진 지 오래다. 요즘은 뇌를 보호하는 강력한 뼈인 두개골이 골다공증에 걸린 것 같다. 심장은 폭탄 같다. 나는 지금 중독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게다가 중독이 생계가 되다니…….

 

 내가 아는 사람이 담배를 끊었는데, 그 과정을 보면서 놀랐다. 니코틴이 잇몸과 치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담배를 멈추자 치아가 입안에서 돌아다녔다.

 

 

 [불편한 소파 같은 존재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과격한 페미니즘이 문제야”라는 말 대신 “어떻게 해야 여성이 좀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 생각해요.

 

 <낮은 목소리>를 만들 때 제작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후원 배지를 팔러 다녔어요. 주로 여성학과 수업이 막 끝난 강의실에 갔죠.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데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던 시절입니다.(웃음) 그런데 사람들에게

‘위안부’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안 팔려요. 재밌게 해줘야 팔려요.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건 그야말로 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굉장히 주관적인 거잖아요. 그 주관적인 내용을 너무 강하게 얘기하면 가르치는 게 되어버려요.

 

 그럴 때는 로또를 사요. 예전에 하던 일이 잘 안 되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로또를 산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당첨이 안 된 거예요. 그 순간 깨달았죠. 아, 내가 아직 많이 힘든 게 아니구나. 내가 정말 심하게 억울한 상황이면 신은 나에게

로또를 당첨시켜줬을 거다.(웃음) 그게 굉장한 위로였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들면 로또 사요. 자동으로, 5천 원어치.

 

 

 [달리고 있다는 감각]

 이 세계에서는 걷는 것보다도 못한 속도일지라도 ‘달리고 있다’는 마인드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잊으면서 더욱 내가 되어간다]

 우울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외할머니가 혹시나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상상하다가 몰래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다 잠드는 아이였다. 내 마음의 주된 정조는 늘 쓸쓸함이었다. 항상

단조의 음악만 틀어주는 채널에 맞춰져 있는 라디오 같았다. 막 사이다를 부은 유리컵처럼 항상 슬픔의 기포가 마음속에서 보글보글 피어오르고 있는 사람.

 

 

 [당신은 진정으로 살아갈 용기가 있는가]

 사바나에서 아무렇지 않게 풀을 뜯고 있는 야생 얼룩말을 볼 때, 우리는 그 얼룩말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거나 우리가 ‘불안’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얼룩말에게서 측정한다면, 얼룩말이 온종일 갈증, 배고픔, 지평선에서 나타나는 포식자의 환영 등 주변 환경으로부터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브루닝은 자신의 책 <긍정의 과학The Science of Positivity>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행복을 느끼게 하는 뇌의 화학물질은 늘 오르락내리락한다. 그게 원래의 특성이다. 그 화학 물질의 농도가 높아지면 우리는 우리 필요가 충족되고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반대로 그 농도가 낮아지면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브루닝은 좋은 감정이 짧은 순간만 지속되도록 진화해왔으며, 그 감정이 늘 유지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는 도파민과 같은 행복 화학물질이 분비되는데, 성공적으로 물웅덩이를 발견한 

얼룩말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얼룩말이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리고 물을 마시자마자, 이 행복 화학물질의 농도는 떨어지고 불안감이 다시 찾아온다. 따라서 얼룩말은 화학적인 행복감을 다시 얻기 위해 그다음

보상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 받는다.

 

 즉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바나의 얼룩말처럼 매일의 ‘행복’을 위해 계속 보상을 추구해야 한다. 삶에서 어느 단계에 도달하더라도, 500평방미터 크기 갑판에 누워 카리브해를 내려다보더라도, 행복이 넘치는 바다를

만끽할 수는 없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계약을 성사해 도파민에 취하거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친구에게 거대한 집을 구경시켜주며 세로토닌에 취하는 등 새로운 보상을 찾아야 한다. 

 

 

 [생일 딜레마]

 프로이트의 책을 읽고 알게 된 바로는, 무의식 속에는 나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절대 나이 들지 않으니 인생의 기점이 되는(서른 살 생일, 환갑 등) ‘큰 생일milestone birthday’이 다가올 때마다 그토록

반감이 드는 것이다. “누구? 내가? 예순이라고? 설마!” 가족 별장에서 언니와 다퉜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랐다고 해서 내 일에 마음을 더 쏟지는 않는다. 언니가 죽기 전에도 나는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하지 않았다. 작가로서 쓰는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긴 했지만, 아이들 문제로 학교 보건교사의 전화가 걸려오면

언제로 일을 중단하고 달려갔다. 나는 시종일관 아이들에게 당연한 존재가 되고자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가족이 나를 실컷 이용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시점 이후로는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이 곧 그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유명한 사람이라면 큰 생일을 알릴 만한 형편이 된다. 뒤에 늘어선 성취들 덕분에 아무런 미련 없이 쉰, 예순, 일흔 살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 경우에는 다소 복합적이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세 권의 책을 냈다.

세 권 모두 자랑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출판사들이 내 이메일에 설렐 만한 이유도 별로 없다는 사실 또한 유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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