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2014(1판 5쇄)
그러나 그녀가 본 미국인들은 공공연한 애정 표현과 미니스커트와 비키니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케임브리지 커먼에서 뒤엉켜 누워 있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아시마의 맥박 위로 미국 시간이 뚝딱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귀청이 찢어지도록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를 길게 끌며 기차가 하우라 역을 출발할 때 읽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작품이었다.
“운이 좋은 녀석이군.” 아쇼크가 정갈하게 묶인 책장들을 넘기며 말했다.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책을 가진 주인이 되었으니 말이야.” 얼마나 다른가, 그는 생각했다. 그가 보낸 어린 시절과.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름에 형태나 무게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억지로 입어야 하는 옷에 붙어 있는 까슬거리는 상표명처럼 그를 물리적으로 괴롭혔다.
타지마할이 지어진 후에 이 건물을 지은 남자들 2만 2천 명은,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모두 엄지손가락이 잘렸다고 관광 안내원이 말해주었다.
어두워지자 창문에 비스듬히 비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창밖에서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대리석 탁자에도 푸르스름한 혈관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언제나 세세한 것까지 염두에 두는 건축가의 머리는 일상생활에 관한 것일 때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뭔가 냉담하면서도 완고한 데가 있었다. 나이는 젊었지만 이미 늙어버린 사람같이 느껴지는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그 중에 또 한 권의 책이 있었다.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오래전에 잊힌 책 한 권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커버는 이미 없어졌고 책등에 찍힌 제목도 닳아서 지워져버렸다. 두꺼운 천 장정의 책이었고, 그 위에는 몇 십 년 묵은 먼지가 앉아 있었다. 미색의 책장은 묵직했고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났으며 만지니 부드러웠다. 겉장을 열어 제목이 찍힌 페이지를 펼치니 책등에 금이 가는 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고골리가 혼자 이 문구를 발견하도록 내버려두셨더 것이다. 한 번도 책이 어땠냐고 묻지 않으셨고, 한 번도 책에 관해 말씀을 꺼내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필체를 보니 대학 시절 내내 그리고 졸업 후에도 아버지가 적어주시던 수표가 생각났다. 그를 돕기 위해, 보증금을 내라고, 첫 양복을 사 입으라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주시기도 했었다.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이름이 여기에 이렇게 숨어서 남아 있었더 것이다. 그 이름은 바로 아버지가 그에게 주신 많은 것 중 첫 번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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