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2021(전자책 발행)

 

 

 거기 담긴 나의 지난 사 년은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깨어난 뒤에도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을 것 같은 꿈들이 가끔 있는데, 그 꿈이 그랬다. 밥을 먹고 차를 끓여 마시고, 버스를 타고,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여행 가방을 꾸리고, 지하철 역사의 끝없는 계단들을 딛고 올라가는 한편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벌판에 눈이 내린다. 우듬지가 잘린 검은 나무들 위로 눈부신 육각형의 결정들이 맺혔다 부스러진다. 발등까지 물에 잠긴 내가 놀라 뒤돌아본다. 바다가, 거기 바다가 말려들어온다.

 

 

 물잔에 빠뜨린 각설탕처럼 내 사적인 삶이 막 부스러지기 시작하던 지난해의 여름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가끔 회화 연습도 했는데, 하다- 핸-하잰으로 이어지는 시제 활용을 내가 틀릴 때마다 인선은 웃음 띤 얼굴로 교정해주었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바람이 센 곳이라 그렇대, 어미들이 이렇게 짧은 게. 바람소리가 말끝을 끊어가버리니까.

 

 

 혹, 하고 뜨거운 게 명치에서부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면 견딜 수 없었어. 집이 싫었어. 외딴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삼십 분 넘게 걸어야 하는 길도 싫고, 버스에 실려 도착하는 학교도 싫었어. 수업 시작을 알리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싫었어. 수업시간도 싫고, 아무것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 것 같은 아이들이 싫고, 주말마다 빨아서 다려 입어야 하는 교복이 싫었어.

 그러던 언젠가부터 엄마가 싫어지기 시작했어. 그냥, 이 세상에 역겨운 것처럼 엄마가 역겨웠어. 나 자신이 혐오스러운 것과 똑같이 엄마가 혐오스러웠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지긋지긋하고, 흠집투성이 밥상을 꼼꼼히 행주질하는 뒷모습이 끔찍하고, 옛날식으로 틀어올린 하얗게 센 머리가 싫고, 무슨 벌을 받는 사람처럼 구부정한 걸음걸이가 답답했어. 점점 미움이 커져서 나중에는 숨도 잘 쉴 수 없었어. 무슨 불덩이 같은 게 쉬지 않고 명치께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어.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눈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것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래야지…. 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맺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없이 사라진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닳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스크랩 뭉치를 내려놓는다. 

 더 이상 뼈들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모은 사람의 지문과 내 지문이 겹쳐지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당신을 내가 구해.

 

 

 그즈음부터 엄마는 잠을 잤어. 언제 그렇게 나에게 잠재우지 않는 고통을 주었느냐는 듯 하루의 삼분의 이, 나중엔 사분의 삼 이상을 잤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낸 마지막 한 달은 거의 종일 잠들어 있었어. 밀물 때가 지나치게 긴 이상한 바다처럼. 모래펄이 완전히 잠긴 뒤 다시는 바다가 빠져나가지 않는 것처럼.

 

 

 무엇이 지금 우릴 보고 있나, 나는 생각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누가 있나.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 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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