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PTIC, VOL.29, 양자역학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우리 꿈속에 상품을 심기 위한 광고주들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이는 은유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엄연한 사실이다. 제55회 슈퍼볼 LV개최 전날 밤, 주류 회사 몰슨 쿠어스Molson Coors는 ‘세계 최대 꿈 연구’라고 이름 붙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쿠어스 맥주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예를 들어 상쾌한 알프스 산맥의 강 같은)와 함께 꿈을 꾸는 사람의 마음속에 넣는 것이었다. 몰슨 쿠어스는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를 고용해 꿈을 배양하는 자극을 설계하고 공짜로 술을 준다며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다. 그 후 팝스타 제인 말릭Zayn Malik이 배양된 쿠어스 맥주 꿈을 꾸면서 자는 모습을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중계를 하기도 했다. ‘엉망진창’이었다는 말릭의 평가와 달리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우리(애덤과 로버트)는 최근 ‘도르미오Dormio’라는 웨어러블 꿈 배양 장치를 개발하는 팀에서 일했다. 이 장치는 사용자가 특정 주제, 가령 나무처럼 단순한 것이나 까다로운 업무 문제같이 복잡한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다음 사용자가 미리 정해놓은 시간 동안 수면을 취한 것을 확인한 후에 장치는 작은 소리로 사용자를 깨우고 사용자들이 보고하는 꿈 내용을 기록한다. 최신 논문들은 우리가 ‘맞춤식 꿈 배양Targeted Dream Incubation, TDI’이라고 부르는 이 기술이 이전에 실험실에서 시험했던 꿈 배양 기술보다 더 안정적으로 수면 전 자극을 혼입하여 실험 참가자들의 꿈을 유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역사 시대는 문자, 즉 ‘텍스트’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생명의 시대 또한 마찬가지다. 수십억 년 전, 지구 위에서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텍스트, ‘유전자’가 출현한 것이 생명의 시초였다. 생명은 텍스트에 관한 것이다. 물질이 텍스트가 되고, 그 텍스트에서 나온 물질과 정신이 텍스트를 보존한다. 텍스트 없는 생명은 없다. 텍스트를 잃어버리면 생명도 사라진다.
생명은 아날로그처럼 보이지만 모든 생명 현상의 이면에는 디지털 텍스트가 있다. 생명 현상의 본질은 그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반응은 어떠 개체에 주어지는 이롭거나 해로운 자극에 대해 접근 반응과 회피 반응을 일으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단세포 생물의 행동에서도 나타나는 패턴이다.
독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다수 대중의 의지에 반하는 것일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오해다. 다수 대중에 반하는 독재는 금방 무너진다. 독재자가 되어서 국가를 운영하는 <트로피코Tropico>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이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독재자라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들을 만족시켜줘야 자리가 유지된다. 독재자는 부패할지언정 민심을 이반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민주’ 역시 중국인들을 만족시켜 줬기에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를 민주주의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대중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소수자와 반대자에 대해서 비상식적으로 탄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와 중국 모두 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 그것이 조작이든 세뇌든 간에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독재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민주주의를 한자 그대로 풀면 ‘백성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해석하면 다수만이 옳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민주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소수의 의견이 자유롭게 통용되고 존중될 때다. 물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독재 국가에서도 다수의 의견은 수용된다. 어쩌면 민주주의보다 더 잘 수용될지 모른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에서는 아무리 다수가 원해도 범죄자에게 적법한 절차를 벗어난 처벌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재 국가에서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라면 살인도 가능하다.
정치가 이렇게까지 즉각적인 것이 된다면, 그냥 모든 것을 다 문자 투표로 정하는 게 낫다… 우리가 문자 투표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이유는 단순한 여론 조사 이상의 결정과 판단을 그들이 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뜻과 조금 다르다 해도 말이다.
민주주의의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반대가 많더라도 자신들의 정책이 장기적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임을 이해시키고 지지를 받아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거대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그런 그림이 있는지 모르겠다. 뭐 누구나 그렇듯이 꿈은 있겠지.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그 꿈은 우리집 강아지가 꾸는 꿈과 다를 게 없다. 현재 우리가 보는 정치인들의 공략은 모두 완전히 똑같다.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국가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간에 모두 한결같이 “국민이 원하는 대로”하겠단다. 그러니 공략이 모슨 변별력이 있겠나. 남은 것은 사생활과 비리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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