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kind, VOL.19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
시인은 대답하기를, 바다나 눈 덮인 광활한 평원에 위엄이 서려 있듯 침묵에도 위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위엄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침묵을 두려워합니다.”
<요즘 애들>의 저자이자 밀레니얼 세대인 앤 헬렌 피터슨은 기본적인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할 일 마비’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기자로 일했고, 꾸준히 운동하며, 책을 쓰고, 이사도 했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한 치의 기쁨도 없는 긴박함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 와중에 신발 밑창을 고치는 것과 같은 사소하며 일상적인 일들은 불가능한 위엄이 되었을 뿐이다. 하루 중 작은 것들을 위한 공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는 피터슨에게 “저는 최근 심리치료사에게 저 자신이 ‘목 위로만 살아있는’ ‘걸어다니는 할 일 목록’ 같다고 말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에벌리 역시 시간을 절약하는 많은 생산성 팁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화 통화는 한 번에 모아서 하고, 서류 작업도 한 번만 하는 등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효율적 기술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중년의 에벌리는 당혹스러웠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일까? 젊은 사람들은 다들 이런 초고속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방식과 크게 다른 점이 있을까? 왜 더 이상 숨 쉴 틈도 없는 것 같을까?’
태어난 것은 ‘삶을 당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삶은 수동태라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다.
우리는 늘 말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라고. ‘머리시작부터 발끝까지’라고 하지 않는다. 머리도 끝이고 발도 끝이다. 끝과 끝은 언제나 맞닿아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책이라는 세계로 도망치는 경우가 꽤 있는 듯하다.
오랫동안 나는 창살에 붙은 덩굴처럼 제임스에게 부착되어 있었다. 이제는 나를 그에게서 분리하고 떼어내어 좀 더 복잡하고 만족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문화이론가 사라 아메드는 사회적 규범을 사회적 재화로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 신화는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가족은… 좋은 삶 혹은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급소가 된다. 결국 이 점을 토대로 우리는 다른 좋은 것들 말고 무언가를 향해 특정한 지향점을 잡게 된다.”
여성은 자신의 결혼식 날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자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는 날, 어른이 되기 위한 규범적 틀을 따라 첫걸음을 내딛는 날로 여기도록 사회화된다.
결혼식처럼 결혼도 비용과 가치, 평가 면에서 지나치게 부풀려졌으며 결혼 자체의 허술한 구상이 고갈되어버렸다는 성 이론가 잭 할버스탬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삶과 사랑의 다른 방식들을 인정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다.
모성은 종종 온전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잘못 언급된다. 나에게는 그 반대다. 나는 이전보다 더 온전해진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사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온전’해지는 것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이 되었다. 내 몸이 내 몸 밖에 사는 다른 존재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나는 영원히 조각난 것이 맞다.
생산성은 우리의 하루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좁은 관점이다. 이는 하루를 계획과 순서, 결과물에 맞춰 단조롭게 만든다… 생산성이 하루를 제한한다면 창의성은 하루를 확장해준다. 창의성은 계획을 따르지 않지만 그만의 성쇠를 수반한다. 하루를 할 일에 국한하는 대신, 창의성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캐나다의 작가 케이트 보울러는 베스트셀러였던 자신의 암 투병기에 이렇게 썼다. ‘인간이라는 병에는 치료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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