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희인, 바다출판사, 2019(초판 1쇄)
셰익스피어 실존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셰익스피어 미스터리’ 세력(‘옥스퍼드파’라고도 불린다)과 그의 실존 여부를 확신하고 입증하려는 기존 학계(‘스트랫퍼드파’라고도 불린다)의 투쟁은 종종 처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빅 데이터로 셰익스피어의 글을 철저히 분석해 그가 실존했던 인물임을 밝히는 책까지 등장한 형국이다. 제임스 샤피로James Shapiro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이 그런 책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옥스퍼대대학 출판부는 30여 년 만에 셰익스피어 전집을 복간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쓴 것으로 알려진 <헨리 6세>에 대해 그의 라이벌 크리스토퍼 말로와 공동 저작인 듯하다며 두 사람의 이름을 저자로 함께 올렸다. 5개국 23명의 학자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이 21세기 첨단 자동화 도구를 동원해 분석한 결과, 셰익스피어의 저작들 중 상당 부분이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 결과일 거라는 주장도 널리 공유되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지하 투과 레이더로 확인한 결과, 셰익스피어의 유골이 이미 20여 년 전에 도난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도 있었다.
저작권조차 포기하고 농민들과 함께 땀을 흘린 ‘스승’ 톨스토이는 자신의 묘에 그 어떤 장식도 묘비도 세우지 말라고 일렀다.
무지한 악기들로 꽉 찬, 아직 ‘음악의 헌정’과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 건반을 거치지 않은 세계. 바흐가 없었다면 신은 권위를 잃었을 것이다. 바흐가 없었다면 신은 삼류가 됐을 것이다. 바흐가 있기에 세계는 실패작이 아닐 수 있었다.
- -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그곳은 개인에 대한 기억이 국가에 대한 기억으로 도구화되는 것을 막고 있다. 한 나라의 국가 묘역이 나라의 중요 인물들을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억을 최적화된 최대치로 만들고자 조성된다면, 현재 독일에는 그런 국가 묘역이 없다. 유명 인사 묘지는 지역적 선택일 뿐이다. 이것은 양차대전을 겪은 독일의 지극히 민주적인 선택일 것이다.
- - 조우호, <헤럴드 경제>, 2015년 8월 18일 자
죽음이 이토록 괴로운 것이라면, 차라리 죽고 싶다
카프카의 최후를 그린 구절을 <카프카 평전>에서 찾아보니 작가는 죽음의 순간마저도 극심한 고통 속에 사경을 헤맨 모양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이 극에 달하자 카프카는 그를 치료하며 곁을 지킨 의사 클롭스토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를 죽여주게. 그렇지 않으면 자넨 살인자야.”
독일어 사전에도 등재되었다는 ‘카프카에스크kafkaespue’, 즉 ‘카프카스럽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을씨년스럽고 적막한 묘지였다.
오랜 세월 낮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한밤이 되어 습관처럼 써댄 그 엄청난 글들을, 왜 그는 모두 없애버리라 했을까.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단순한 허무나 변덕 아닐까, 추측도 해봤다. 그러나 그 유언이 진심이었음은 마지막 소설을 두고 했다는 작가의 말로 입증될 것이다.
“소설은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설산을 등반하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골프를 치고, 체스를 두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체 케게바를 보라. 수염을 말끔히 깎고 변장을 해서 다시 새로운 전장으로 향하는 그 비장한 모습도. 그 사진들에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생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낙천적인 한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세상 모든 불의 앞에서 가장 먼저 우리는 이론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행동이다.”라고 말한, 행동하는 사람으로서의 면모가 그 사진들에서도 읽혔다.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간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사형수”라 말한 카뮈를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 깊은 내면에서는…… 카메라 안에 필름이 없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어요.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은 피사체를 확보하고 정확한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일입니다…... 몇 분의 1초 동안 지속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창조의 순간입니다.”
앤드루 로빈슨, <천재의 탄생> 중
1962년 프랑스 기자와의 대담에서 브레송의 말
이제는 너무도 유명한 경구가 되어버린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발레리가 한 말이라는 걸 보면, 그는 결코 우리에게 먼 시인은 아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웃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울며 괴로워하였다.
‘티베트 사자의 서’ 중에서
셰익스피어 역시 그의 비극 <리어왕>에서 “참아라. 모두가 울면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는가. 바보들만 있는 이 거대한 무대에 온 것이 슬퍼 운 거야.”라며 인생을 통찰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말은 깊은 울림을 안겨줍니다. 생명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이 죽음의 반대편으로 완강히 고개를 돌리는 건 자연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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