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PTIC, VOL.31, 수학이 세상을 만날 때
사람들은 건강 주스를 다양한 이유로 마신다. 그중 하나가 ‘해독 작용’인데, 이는 유사과학을 상징하는 경고등이나 마찬가지인 유행어다. 간과 신장은 몸에서 독소를 제거하는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간과 신장은 납이나 다른 중금속에 의한 급성 독성이 아닌 이상 특별한 도움이 필요 없다. 그리고 건강 주스는 급성 독성에는 별 소용이 없다.
이곳에 해독 주스로 어떤 독소를 제거할 수 있는지 문의해봤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죄송하지만 FDA 규제를 받고 있어서 저희 제품의 정확한 건강상 이점을 특정해서 선전할 수 없습니다.”
건강 주스가 해결하지 못할 건강 문제가 있기는 할까? 재료를 잘못 넣으면 증상이 더 나빠지는 걸까? 어떤 증상에 어떤 주스가 효과가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직감이나 신의 계시일까? 흔들리는 추로 점을 치거나 주술사의 힘을 빌렸을까?
사진 위조는 새로운 게 아니다. “사진 위조의 역사는 사진이라는 매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양이 빠르게 늘고 위조 수준도 몹시 정교해졌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가짜 이미지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리오 L. M. 사치Dario L. M. Sacchi와 그의 동료들의 실험에서는 피험자들에게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위조 사진을 보여주자 당시 사건 기억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스티븐 J. 프렌다Steven J. Frenda의 연구에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크로퍼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메이저리그 투수 로저 클레멘스와 한담을 즐겼다”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UN에서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와 같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위조 사진을 피험자에게 보여주자 거의 절반이 “그 일이 기억났다”라고 보고했다.
유명인이 부적절한 언사로 비난을 받게 되고 그런 비난을 입증하는 음성이나 영상 기록이 있더라도 딥페이크 파일이라고 우기며 진짜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체스니와 시트론이 ‘거짓말쟁이의 배당금’이라고 일컬은 이 현상은 이미 미국 정치에서 추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신체적 혹은 재정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여성이 선택할 문제다.
일요일 아침에 종교적인 순결 서약에 서명하는 것과 열정으로 충만한 토요일 밤에 그 서약을 지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전능하신 신께 “주여, 저를 순결하고 금욕적인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오스카 와일드가 “나는 무엇에든 저항항 수 있다. 단 유혹만 제외하고”라고 인정한 것처럼 말이다.
“유물론자로서 나는 우리가 육체를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육체라고 본다. 무신론자로서 나는 우리가 사후 세계를 누릴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만져보면 온도가 모두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음식보다는 음식을 감싸고 있는 포장재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알루미늄 캔과 같은 금속은 종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포장재보다 상대적으로 더 차갑게 느껴진다. 심지어 스티로폼은 냉동고에 오랫동안 두어도 전혀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 모두가 냉장고 안에 있었으니 같은 온도여야 할 텐데 어째서 우리의 손은 이들의 온도를 다르게 느끼는 걸까?
재료마다 열감이 다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물질의 열전도율과 관련이 있다. 열전도율은 물질이 얼마나 열을 빠르게 전달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주스 캔이 종이 팩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금속이 열을 잘 전달하기 때문이다. 금속은 우리 손에서 빠르게 열을 빼앗아 피부를 금방 차가워지게 만든다. 따라서 캔에 들은 주스가 상대적으로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70~81와트의 기초대사량을 가진다. 그런데 이는 과소 추정된 값이다.
이런 세상에서 굳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면 그건 분명 그 친구의 신용에 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은 돈을 빌려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친구 소개로 이성을 만나는 사람보다 결혼정보 회사를 통해 짝을 찾는 커플이 훨씬 많다. 경험자의 말로는 소개팅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이다. 주변 소개로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사실 요즘은 지인을 통한 취업이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공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물론 소위 ‘좋은’ 직장만 그렇다). 쌀이 떨어지면 이웃집이 아니라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편이 낫다. 궁금한 것은 옆집 대학생에게 묻기보다 인터넷 검색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니 친구나 동료는 그냥 같이 놀 때만 유용하다. 인류사 초유의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장기적인 호혜적 협력 관계를 쌓아 올리는 수고에 비해서 기대 이익이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비해서 ‘덕’의 비용 – 이득의 페이오프pay off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회에는 구성원이 공감하는 어떤 가치관이 존재한다.
어느 공동체를 보더라도 젊은 세대를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이건 새로운 세대가 공동체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원주의의 핵심은 변화다. 내 위치와 정체성이 언제나 변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나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다원주의는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그건 난 모르겠고, 아무튼 불편하다”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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