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안톤 숄츠, 문학수첩, 2022(초판 4쇄)

 

 

 

 어린 시절부터 이것은 꿈꿔야 하고, 저것은 아예 생각도 해선 안 된다는 무수히 많은 엄격한 규칙과 고정관념 속에서 설계되고 정의 내려진 무수히 많은 엄격한 규칙과 고정관념 속에서 설계되고 정의 내려진 행복이 존재하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ny Ford는 멋진 말을 남겼다. “품질quality이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제대로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대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이 겪은 ‘교육 지옥’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서로 어울리는 ‘집 안in-house 문화’보다 ‘집 밖out-house문화’가 우세한 것 같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집 안에서 만나기보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고도성장의 시기는 지나갔다. 해마다 10퍼센트, 15퍼센트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지금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주문은 쉴 때도 되었다. ‘더 잘’, ‘더 많이’라는 밀어붙이기식 주문은 삶을 각박하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어느 학자가 나에게 한 말처럼 한국 사람들은 이제 지는 것도 배워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정말 마음이 아픈 것은 이처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으며 이토록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들이는데도 결과가 너무도 시시하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투자를 정당화해 주는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얼마나 될까?

 

 

 “독일에서는 잘 배우려고 시험을 보는데, 한국에서는 시험을 잘 보려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바뀔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심지어 어학당 선생님은 수업 첫 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여러분은 서울대학교 학생입니다. 만약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면 그냥 서울대학교 학생이라고 말하세요. 여러분에게 소리를 높이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질 거예요. 아니면 주변에서 누구든지 나서서 도와줄 거예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는 미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편협함이다. 관용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악의적이다. PC는 공정함을 명분 삼아 엄격한 규칙과 코드로 사람들의 언어를 제한하고 통제하려 한다. 과연 그것이 차별과 싸우는 방법인지 의심스럽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타인의 권리를 위해 기꺼이 싸우겠다는 신념은 한 세기 이상 많은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들의 표준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삭제 문화’와 ‘PC’가 횡행하는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요즘 온라인 문화를 반영하면 다음과 같은 말로 바뀔 것이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때문에 당신에게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줄 것이며, 당신을 검열하고 당신이 직장에서 해고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미투운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무조건 여성혐오자는 아니며,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사람이 의심할 여지 없는 인종 차별주의자는 아니다.

 

 

 내 눈에 보이는 한국 사람들의 한은 자기 연민에 가깝다. 꼭 한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마음가짐이 당연한 것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오늘의 ‘나’는 자신을 타인과 끝없이 비교하고 벤치마킹한다. 타인의 포스팅을 뒤져 ‘힙’한 식당이나 카페, 여행지를 찾아 헤매고, 뒤떨어지지 않은 물건과 옷차림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늘 최신 상태의 ‘기분 좋은 나’는 인증샷을 통해 나에 대한 인식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더 기분 좋은 누군가가 등장한다.

 

 

 깨끗한 물이 구하기 힘든가? 내전에 시달리며 언제 나와 가족이 죽을지 모를 공포에 떨고 있는가? 기본적인 의약품이 부족해 작은 질병에도 아이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가? 내 머릿속 지옥의 이미지는 이러하다. 이런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삶을 지옥이라고 한다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마음속이 지옥이라면 모를까, 이 사회가 지옥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해결되지 않는 한 나의 ‘천국’은 오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에게 그런 완벽한 사회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오지 않을 거라 이야기하고 싶다. 믿음과 열망에 재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지금 미얀마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절망하고 있는 이들 역시 우리와 비교하면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선불교의 고전적인 문답을 인용하자면 “선과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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