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문학동네, 2022(1판 9쇄)

 

 

 

 내가 잘 먹거나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면 친척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에 필요한 것들을 비단에 둘둘 싸서 자기 방에 두었다. 화장될 때 입을 옷, 납골당에 진열하길 바란 액자 사진 그리고 장례비였다.

 

 

 울긴 왜 울어!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닌데,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워 전부 해드릴 거다. 엄마가 시들어가는 것을 나 혼자 막아낼 것이다.

 

 

 나는 유진에 온 뒤로 5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 엄마가 맨날 꼬집던 똥배가 사라지고, 스트레스로 인해 샤워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씩 빠지기 시작했다. 얄궂게도 나는 그게 반가웠다. 줄어든 내 몸무게는 내가 엄마와 더 단단히 묶여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어딘가를 향해 그렇게라도 경고장을 날리고 싶었다. 엄마가 사라지기 시작한다면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은미 이모는 스물네 차례 항암치료를 받은 끝에 밸런타인데이에 돌아가셨다. 낭만적인 사랑이라고는 한 번도 못 해본 여자에겐 실로 잔인한 농담 같은 운명이었다. 이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였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나는 우리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묘지를 골랐다. 언덕을 절반쯤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철문이 있는 긴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지였다. 아빠는 매장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좀 있다고 고백했다. 해충 구제업자로 몇 년을 일했으니 벌레들이 앙갚음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마치 은행이나 도서관에 찾아간 것처럼 진열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맨 처음 한 말은 엄마라는 한국말이었다. 아기 때부터 엄마의 중요성을 느꼈나보다. 엄마는 내가 가장 많이 본 사람이었고 의식이란 게 생겨나면서부터 이미 엄마가 내 거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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