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Philosopher, VOL.20
불확실성 속에서 나아가기
<뉴필로소퍼> 20호의 주제는 “불확실성 속에서 나아가기”입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작가 에밀 시오랑은 <태어났음의 불편함>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나를 견딥니다”라고 대답한 바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적 불안을 벼랑 끝을 따라 걸을 때 느끼는 현기증에 비유했다. 불안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발을 헛디딜지, 발밑의 땅이 꺼질지, 갑자기 불어 닥친 세찬 바람에 떠밀려 추락할지를 두려워하는 감정과 다르다. 불안이란 당신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거나 아무리 무모한 짓을 하더라도 그걸 막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깨달음에서부터 온다.
불확실성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반직관적인 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즉 불확실성을 말끔히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으니 아예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타고서 시간이라는 강 위를 나아가고 있다. 다음 굽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미지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면 삶 자체가 문제일 수밖에 없고, 불안이 야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은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산하의 라이프 이벤트 연구소를 운영하며 불확실성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이 불확실성과 기다림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탐구한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위니 교수는 변호사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법학 전공생들, 생체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들, 논문 심사를 기다리는 연구자들, 성인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의사들, 그리고 어린이 환자와 대화해야 하는 천식 전문의들을 연구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자유 의지를 선택한다면, 그리고 자유 의지는 환상이라면, 그 정신의 가장 대단한 행동은 자기 자신의 환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확실성을 갈망하다 보면 조작과 세뇌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과학자 캐슬린 테일러가 지적했듯이, 광신적 집단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경험할 대 느끼는 불편한 심리를 이용한다. 광적인 정치집단이나 종교집단은 세상 만물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단순하고 확실한 이론을 제공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외부 세계의 혼돈과 불확실성을 환기하면서 그들의 신념 체계 속으로 맹목적인 신도를 끌어드리고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여기 있는 우리 뼈가 당신 뼈를 기다린다.
죽음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일로 여기는 편이 더 쉽고, 감정적으로도 덜 힘겹다. 우리의 집단적 부인이 죽어가는 사람과 유족에게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오더라도 죽음의 영향을 멀찌감치 피하는 것이 더 편하다. 의학 발달로 죽음은 대체로 노인만 겪는 재앙이 되었고, 죽음을 완전히 무시하고 싶은 충동도 커졌다.
해닝은 “미국인의 삶에서 너무나 많은 측면이 그런 것처럼 죽음도 외부에 위탁되었고 상업화되었다”라고 말한다. “죽음은 병원과 영안실에 격리되었고, 일상의 대화에서 언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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