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 피터 비에리, 은행나무, 2022(1판 17쇄)
독립성은 타인에 관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되지요.
정년 나는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이 증오심을 다시 물려주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화해와 마음의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내적 단조로움과의 싸움, 체험과 바람이 변화 없이 굳어버리는 현상과의 투쟁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삶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이 자아상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얼굴은 모든 자아상이 그 진위가 모호하고, 착각과 자기기만과 자기 설득으로 가득 찬 구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만일 외부 권위와 그것이 주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우리는 자기 결정의 상실을 경험할 것입니다. 마치 머슴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 두려움이 내부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삼은 자기 자신의 종이 됩니다.
프랑스의 모럴리스트인 라브뤼예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외부에서 행복을 찾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굴종적이고 올바르지 않으며 정의와는 동떨어진, 미움과 전횡과 편견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판단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그가 말한 것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타인의 칭찬과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소망이었죠. 이것은 매력적이고도 위험한 욕구입니다. 인생에서 너무 일찍 인정을 받은 사라들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자기 자신을 크게 놓쳐버린 느낌을 받는 그런 삶을 살게 되지요.
바로 라브뤼예르가 꼬집었던 것으로,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결정적 삶은 이러한 낯섦도 견뎌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경쟁과 순위의 논리가 너무도 시끄럽게 세계를 뒤덮고 있지요. 그것도 전혀 울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울리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문화는 조금 더 잔잔한 소리가 지배하는 문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는 고요함의 문화입니다.
먼저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 걸까요? 자기 내부를 향해야 한다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정신을 한데로 모으기만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예를 들면 특정한 법률이나 전쟁에 관한 자신의 생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시선은 안을 향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즉 그 사안 자체로 향해야 합니다.
자물쇠를 채운 자신의 내부세계 안에서 자기 인식을 찾아 나선다면 그것은 오류일 것입니다. 한 줄기 깨달음을 주는 내부로의 시선이 사고와 감정의 어둠을 몰아낼 것이라고 말하는 은유적 문장들이 습관적으로 주는 유혹을 떨쳐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짜증이나 분노라고 했을 때 정확히 누구 또는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몇 년 전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삶을 힘들게 하는 이 충동, 이것은 화려함을 향한 갈망인가 아니면 단순히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욕구인가, 혹은 인정받고 싶은 더 깊은 차원의 갈망인가?
새로운 성과를 올리고 끊임없이 능력을 보여야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이 무시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목이 졸려 스스로 지운 능력과 성공의 기준에 쫓겨 다니며 살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힘이 나를 조종하는지 알아내지 않으면 사물을 바꿔볼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아요.
자신을 안다는 것은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 그 두 가지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는 것이지요.
우리는 언어의 낯섦에서 다른 정신의 낯섦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이란 우연한 것이며 항상 대체물이 있습니다. 교양은 바로 이러한 우연성을 인정하는 것이고요.
일반적으로 말해서 종교란, 세계의 기원에 관한 해설과 도덕성에 대한 개념, 그리고 죽음이나 고통이나 고독 등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이겨내는 해결책을 제시할 때 필요한 세 가지 요소를 갖춘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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