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뇌과학, 리사 제노바, 웅진지식하우스, 2022(초판 6쇄)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 경험한 일 대부분을 내일이면 잊는다. 결국 인생 대부분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다.
뇌에 담당 부위가 정해져 있는 인지나 운동과는 달리 기억은 저장을 전담하는 신경 세포나 기억 피질 같은 것이 따로 없다.
나중에 안경을 못 찾아서 답답해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기억 때문이 아니다.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기억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면 어떤 방법이 더 유리할까? 전날 밤 벼락치기로 외울 것인가 아니면 7일 동안 나눠서 조금씩 외울 것인가?
같은 시간을 공부한다면 조금씩 나눠서 외우는 편이 벼락치기보다 유리하다. 기억의 간격효과spacing effect 때문이다.
일화기억을 형성하는 사건들은 대개 15세에서 30세 사이에 모여 있다. 이때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 집중되는 회고절정reminiscence bump의 시기다. 왜 그럴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첫 키스, 첫 사랑, 첫 자동차, 첫 대학 생활, 첫 성경험, 첫 직업, 첫 집, 첫 결혼, 첫아이 등 다양한 방면에서 첫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미국 성인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각종 화면 앞에서 보낸다. 밤에 여덟 시간을 잔다고 했을 때, 의식이 깨어 있는 동안 화면 밖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은 하루 네 시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인생을 디테일이 풍부하게 살아 있는 입체 세계로 기억하고 싶다면, 2차원 화면에서 나와 3차원의 세계를 살아야 한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던진 다음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과 사건을 뒷받침하는 거짓 정보도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지어낸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참가자의 25~50퍼센트는 하지도 않았던 경험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9월까지 무고한 사람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DNA 검사로 누명을 벗은 사례는 미국에서만 365건이었다. 이 중 75퍼센트는 목격자의 증언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즉 이 목격자들의 기억은 전부 틀렸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면 문제를 더 키우게 되고 이미 약해져가는 기억력이 더 망가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마치 인터넷 검색 서비스가 기억력을 망치는 첨단 목발 같은 것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이것은 근거 없는 믿음이다. 토니 소프라노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을 검색해본다고 해서 내 기억력이 약해지는 일은 절대 없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 힘으로 기억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써봐야 기억력이 좋아지지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세계적인 첼로 연주자 요요마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266년 된 250만 달러 가치의 첼로를 택시 트렁크에 놓고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떻게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놓고 올 수 있었을까?
미래기억prospective memory은 나중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억이다. 미래기억은 정신적인 시간여행 같다. 미래의 내가 하려는 일을 미리 정해두기 때문이다. 뇌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인 동시에 미래의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뇌는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취약하다.
요요마가 첼로를 두고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첼로 케이스라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단서가 그의 시야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에서 내릴 때 기억을 촉발할 단서가 없었기 때문에 미래기억, 즉 첼로를 가지고 내려야 한다는 기억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첼리스트인 린 하렐은 17세기에 만들어진 40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역시나 뉴욕 택시 트렁크에 두고 내렸다.
누구의 미래기억이든 대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심지어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2013년 미국 보건 안전 감시기관인 조인트 커미션Joint Commission의 보고에 따르면, 이전 8년간 수술 후에 환자의 체내에 남겨진 외과 수술 도구는 무려 772개였다…. 의사들이 가위, 메스, 스펀지, 장갑 등을 잊어버리고 환자의 몸 안에 남겨두는 사례는 놀랄 정도로 많다.
피험자들은 어떤 항목을 주로 기억했을까? 다른 사람의 결과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긍정적인 특성을 부정적인 특성보다 훨씬 많이 기억했다. 반면 다른 사람의 결과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긍정적인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을 동일하게 기억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볼 때 긍정적인 면에 치우친다. 즉 스스로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정보를 선택적으로 강화하고 기억으로 저장하는 반면 부정적인 정보는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잊는다.
매일 밤 여덟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면 우리 인간은 평생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게 된다. 운 좋게 85세까지 산다면 24만 8200시간 동안 잠을 자는 것이다. 환산하면 28년을 꼬박 잠들어 있는 셈이다! 지금 쉰 살이라면, 이미 16년을 자면서 보낸 셈이다. 16년 동안 읽지도 일하지도 생각하지도 사람들을 사귀지도 놀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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