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조슈아 포어, 갤리온, 2022(초판 21쇄)

 

 

 펜필드는 의식이 멀쩡한 간질 환자의 두개골을 절개한 뒤 전자 탐침으로 뇌를 자극하는 실험을 했다. 간질을 일으키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 치료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전자 탐침으로 측두엽의 특정 부위를 건드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환자가 오래전에 잊어버린 기억을 꼭 방금 전에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같은 지점을 다시 자극하면 같은 기억을 계속 끌어낼 수 있었다. 이 실험에 기초해 펜필드는 뇌가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집중한 것은 모두 기억할 수 있으며 이 기억은 영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S에게는 숫자에도 인격이 있었다. “1은 당당하고 체격이 좋은 남성입니다. 2는 콧대 높은 여성, 3은 우울해 보이는 남자인데 왜 그렇게 보이는지 저도 모릅니다. 6은 발이 부풀어 오른 남자, 7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 8은 헐렁한 옷을 겹겹이 걸쳐 입은 아주 뚱뚱한 여성입니다. 그래서 87이라는 수를 보면 뚱뚱한 여성과 콧수염을 배배 꼬고 있는 남자가 같이 보입니다.” S가 한 말이다.

 

 

 병아리 감별사가 눈으로 익혀야 하는 항문의 형태가 어림잡아 1,000가지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감별사를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은 항문을 보자마자 성별을 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4초만 머뭇거려도 손에 쥐고 있는 병아리의 항문이 부풀어 올라 그냥 수평아리처럼 보이게 된다. 실수는 곧 비용이다.

 

 

 병아리 성 감별이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연구 주제인 이유, 그리고 나도 기억술에 대해 조사하면서 관심을 가진 이유는 전문가라고 평가받는 병아리 성 감별사들조차 성 감별이 애매한 상황에서 마지막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에 대해 자기 자신도 이해할만한 설명을 못 한다는 역설이다.

 

 

 “제가 주관적 시간을 연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허망한 느낌이 있잖아요. 도대체 한 해 동안 뭘 했지 하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하는 겁니다.”…… “더 많이 기억하고, 인생에 아주 오래 남을 추억을 차곡차곡 쌓고, 시간의 흐름을 더 확실하게 각인하는 거죠.”

 

 

 단조로움이 시간을 줄인다. 시간을 늘리는 것은 새로움이다.

 

 

 어떤 기억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지는 않다. 처음 기억과 유사성을 유지할 뿐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오래된 기억은 제3자가 찍은 사진처럼 기억되고, 새로운 기억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기억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적했다.

 

 

 최근 벤한테 불운이 있었다. 원래 그는 세계 메모리 챔피언십에 참가할 계획이 없었다. 그 대신 세계 메모리 챔피언십이 끝나고 1주일 뒤에 열리는 보드게임 잔치인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생각으로 지난 6개월 동안 원주율의 첫 5만 자리를 암기하는 데 전념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 달 전에 아키라 하라구치라는 한 일본 기억술사가 갑자기 나타나 원주율 8만 3,431자리를 암송하는 일이 생겼다. 소요 시간은 16시간 28분이었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접한 벤은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했다.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3만 3,432자리를 더 외우느니 세계 메모리 챔피언십에 출전해 타이틀을 방어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뇌는 아주 소모적인 기관이다.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체내에 흡수되는 산소의 5분의 1, 포도당의 4분의 1을 소비한다. 

 

 

 감정, 사색, 신경증, 꿈을 예외로 할 경우 뇌의 기본 구실은 예측과 계획이다.

 

 

 새로운 능력을 학습하는 사람의 뇌를 MRI로 촬영해 보면 단계마다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임무를 자동적으로 수행함에 따라 이성적 추론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는 떨어지고 다른 부위는 활성화된다. 이것을 ‘오케이 플래토’라고 한다. 오케이 플래토란 계속 연습하던 것을 어느 순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서 만족하는 수준이다. 임무가 자동적인 것, 즉 무의식적인 것이 되면서 더는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것들이 대부분 어느 순간에는 오케이 플래토에 도달한다. 10대에 운전하는 법을 배워 조금 시간이 흐르면 신호 위반과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된다… 아버지는 40년 동안 골프를 쳤는데도 전혀 진전이 없다. 40년 동안 핸디캡이 한 타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실은 아버지도 오케이 플래토에 이른 것이다.

 

 

 어떤 것에 정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연습하는 동안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동화 단계로 넘어가 무의식적 상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보통 자폐 천재는 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인다. 그래서 ‘천재의 섬’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대니얼은 아예 군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천재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