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B 95, SPOTIFY
모든 삶의 배경에 음악, 더 넓게는 오디오 콘텐츠가 함께하는 것. 실제로 그는 스포티파이가 음반 저장고 개념으로 인식되기보다 사운드트랙(배경음악) 공급망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스트리밍 기술의 발상 배경은 스포티파이 창립 스토리를 다룬 TV 시리즈 <플레이리스트>에서도 잘 묘사됩니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음악을 공유하는 건 ‘평등, 자유’라는 가치와 연결되었습니다. ‘음악은 사치품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물과 음식 같아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운동과도 같은 움직임이 스트리밍이라는 상품을 발명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게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중요한 건 CD나 라디오에서 좋은 소리를 내는 일이 아니다. 스포티파이에서 얼마나 좋은 음향을 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좋은 음악을 찾는 음악 애호가에게는 마음과 귀가 편안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이른바 ‘라우드니스 전쟁(다른 음원보다 소리가 좋게 들리도록 하기 위해 음량을 키워서 녹음하는 음반업계의 풍토)’이라는 것이 음악 산업 역사의 사소한 각주처럼 사라질 테니 말이다.
“스포티파이는 개개인이 생성한 고유의 플레이리스트를 살핍니다 이후 5억 1500만 구독자의 플레이리스트 중 취향이 비슷한 이들을 찾고, 그룹화해요. 그 그룹을 형제, 자매라는 뜻을 지닌 ‘리스닝 시블링listening siblings’이라 이름 붙이고 이들의 개인 플레이리스트를 모아 서로 비교합니다. 만약 하나의 그룹에서 1000곡 정도가 모였다 가정하면, 각자 플레이리스트에 없는 곡이 분명 있을 테고, 인공지능이 그 곡을 일일이 파악해 개별적으로 추천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취향에 부합하면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신서한 곡들로 구성된 플레이리스트의 추천이 가능합니다. 이용자가 애써서 취향에 맞는 음악을 탐색할 필요가 없죠.”
“청취자가 신중하게 선곡한 플레이리스트에 스포티파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곡을 ‘추가’하는 시도는 ‘데일리 믹스’나 ‘새 위클리 추천곡’같이 완성형 재생 목록으로 제안하는 일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청취자는 자신이 직접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나 좋아요를 표시한 곡이 담긴 목록에 애착을 갖고 있기에 그 배열을 바꾸고, 곡을 추가하는 시도는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이용자의 애착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기쁨을 전달하는 일의 ‘경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저희는 스마트 셔플 기능을 통해 자신이 추가했는지, 스포티파이가 추가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저희의 추천곡이 플레이리스트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A/B 테스트를 수없이 진행해 스마트 셔플의 사용자 경험 향상에 필요한 양적 데이터(quantitative data)와 질적 데이터(qualitative data)를 축적했어요.”
음악 취향은 상황이나 환경, 앱에서 제공하는 추천 기능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자신의 MBTI를 확인하고, 사회성 지수를 가늠하듯 음악적 성향을 파악하고 인지하는 일은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단서로 쓰일 수 있다.
2006년 스포티파이 창립 당시 한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언제나 영감을 주는 두 가지는 음악과 기술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인생에 큰 의미를 가진 두 분야인 음악과 기술은 서로 교차 지점에 있습니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핵심 아이디어는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음악은 일정한 질서 아래 리듬, 선율, 형식 등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고, 곡을 연주하는 작업은 연주자 개인이 그 정해진 규칙을 깨면서 자신만의 방법과 스타일로 새롭게 변주하고 실험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질서를 지닌 컴퓨터 언어 코드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소통합니다. 정해진 규칙을 읽어내야 하지만, 창의적 사고로 코드를 마음껏 조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어요. 결국 음악과 기술 두 영역 모두 일정한 규칙, 즉 논리(logic)를 따르되 그 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 새로움을 끌어낸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지요.
글로벌 경제 시장이 더 이상 단일 수입원에 의존하지 않는 긱 이코노미 geek economy(기업이 특정 프로젝트나 업무별로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 형태의 고용을 늘리는 경제 현상)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 봐도 변화를 체감할 수 있죠. 그에 따라 일의 정의도 유연하면서 다양해졌고요.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계속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발 빠르게 포착하고 읽어내야 합니다.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 그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도 계속 바꿔나가야 해요.
제가 생각하는 현재의 스포티파이는 음악과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오디오 북처럼 교육용 오디오 콘텐츠로 자신을 표현하는 작업까지 모든 크리에이터가 모여드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내고 있어요. 더 넓은 의미를 포괄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러 digital storyteller’를 위한 곳(home)이 되는 것이죠. 그들이 선택한 매체나 도구가 어떤 것이든 스포티파이 플랫폼에는 세계 최고의 스토리텔러가 모여든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현실화하고, 많은 사람이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타인을 쉽게 모방할 수 있어 ‘동일성의 바다(sea of sameness)’에 빠질 위험이 점점 높아진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 스포티파이의 최우선 목표는 타 서비스와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에크는 이를 위해 로렌츠손에게 스포티파이가 성공하려면 비범한 컴퓨터 천재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로렌츠손 역시 언제나처럼 에크의 말에 동의했다. 에크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프로그래머는 안드레아스 엔 Andreas Ehn이었다. 그는 순수하게 코딩을 사랑하는, 스웨덴에서 천재 개발자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엔이 스포티파이 기술 이사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내 스웨덴 왕립 공과대학교 엘리트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스포티파이로 몰려들었다. 대학 시절부터 워낙 엔의 명성이 자자했기에 웬만큼 실력이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모두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단 하나였다. 전 세계 음악을 자유롭게 검색하고, 공유하는 합법적인 음악 플랫폼을 만드는 일.
스포티파이에 모인 프로그래머들은 스웨덴을 대표하는 일명 ‘어벤져스 군단’이었다. 그들은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단, 동시에 이들은 에크의 집요하고도 까다로운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스포티파이의 음원 재생 플레이어는 번개처럼 빨라야 한다. 절대로 해킹당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음악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 에크가 엔에게 전달한 보고서의 내용이다.
2008년 10월, 스포티파이는 2년여간 매달려 개발한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처음 세상에 공개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스포티파이 웹 페이지에서 원하는 노래를 검색해 재생 버튼을 누르면 단 0.2초 만에 음악이 흐르고, 음원을 내려받는 방식이 아닌 스트리밍 방식을 적용한 시스템이다.
우리는 음악이 삶의 모든 장소와 그곳에 둔 모든 기기에서 흘러나오기를 원합니다.
에크는 냅스터에서 혁신적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을 떠올린 것처럼, 시대가 원하는 요구와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해결하고 마는 전형적 프로그래머 성향의 사업가다.
“스포티파이는 애플의 아이튠즈와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희가 스포티파이를 구상했을 당시 대부분의 음악 플랫폼은 사용자가 곡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기존 음악 시장의 수익 구조에 기반한 서비스를 론칭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해커의 정신을 장착한 공학도였죠. 음악이나 수익 구조 따위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파일을 공유할 수 있을지에만 집중했어요.”
제 셍각에 회사는 조금만 방치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으로 바뀌어요. 스포티파이의 만트라 mantra 중에는 “변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과제다(Change is our constant)”라는 문구가 있는데요 스포티파이가 12개월 후, 그다음 12개월 후에도 잘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꾸준히 변화를 시도하는 겁니다. 익숙해지기 전에 늘 한발 먼저 움직이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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