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어크로스, 2023(초판 10쇄)
우리 시대의 모토가 ‘나는 살고자 했으나 산만해졌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과학자들은 학생들의 컴퓨터에 추적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그들이 평범한 하루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평균 67초마다 하는 일을 전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이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의 중간값은 겨우 19초였다.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의 정보과학 교수이자 나와 인터뷰를 한 글로리아 마크Gloria Mark가 진행한 또 다른 연구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성인이 평균적으로 한 가지 일을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는 3분이었다.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량의 엄청난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다.
미국인의 평균 스크린타임은 세 시간 15분이다. 우리는 24시간 동안 핸드폰을 2617번 만진다. 가끔 이들은 자신이 사랑했으나 그만둔 활동(예를 들면 피아노 연주)을 아련하게 이야기하며 먼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몇 시간마다 내 안에서 낯선 감각이 꿀렁꿀렁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뭐지? 아, 맞다. 평온함이었지. 하지만 내가 한 거라곤 두 개의 금속 덩어리를 놓고 온 것뿐이었다. 이게 왜 그렇게 생경할까? 마치 산통으로 악을 쓰는 두 아기를 몇 년 동안 안고 있다가 유모가 아기들을 대신 맡아주어서 아기들의 비명과 구토가 눈앞에서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수네는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상류층은” 주의력이 처한 위험을 “매우 잘 인식해” 자신의 한계 내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고 나머지 사회 구성원은 “조종에 저항할 자원이 적어서 컴퓨터 속 세상에 살며 점점 더 남에게 조종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 우려한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 할 때 사실 사람들은 “저글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생각의 세 번째 대가는 중장기적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대가에는 창의력 유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훨씬 덜 창의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생각과 혁신은 어디서 나오죠?” 얼이 물었다. 새로운 생각과 혁신은 뇌가 보고 듣고 배운 것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 때 나온다.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의 정신은 자동으로 그때까지 흡수한 모든 정보를 돌아볼 것이고, 그 정보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련성을 끌어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어나지만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각이 튀어나오고, 관련이 없다고 믿었던 생각들이 갑자기 관계를 맺게”된다. 이렇게 새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그러나 얼은 “작업을 전환하고 실수를 바로잡으며 정보 처리에 많은 시간을” 쓴다면, 뇌가 “떠오르는 관련성을 따라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고 진정으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사무직 노동자 대부분에게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단 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위와 상관없이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 <포춘>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의 CEO가 방해받지 않고 보내는 하루 평균 시간은 겨우 28분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무신론자가 되었을 때 온 세상이 침묵에 잠긴 듯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믿는다. 자신이 선택을 내린다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복잡한 정신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건 다 환상이다. 우리와 우리의 집중력은 그동안 살면서 경험한 강화 훈련의 총합일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인스타그램의 설계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만약 우리가 사용자에게 ‘하트’와 ‘좋아요’를 줘서 셀카 찍는 행동을 강화한다면, 씨앗을 더 먹기 위해 강박적으로 왼쪽 날개를 펼친 비둘기처럼 사용자들도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할까? 인스타그램의 설계자들은 스키너의 핵심 기술을 수십억 사용자에게 적용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는 집중력에 관한 기본 사실이다.
우리 다수가 보상을 얻기 위해 기괴한 춤을 추도록 훈련된 새장 속 새들과 비슷하며, 그러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그러한 행동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1980년대 후반, 미하이는 화면을 바라보는 일이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몰입 활동 중 하나임을 발견했다. (그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오락 기기에 둘러싸였음에도… 우리 대다수는 지루함과 막연한 좌절감을 느낀다”라고 경고했다.)
찰스는 소비자본주의적 가치의 지배를 받는 사회에서 “수면은 커다란 문제”라고 말했다. “잠든 사람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아요. 아무 상품도 생산하지 않고요.”
찰스는 인간이 건강에 적합한 수면 시간으로 돌아가면 “경제 체제에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경제체제는 잠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집중력 부진은 로드킬일 뿐이에요 그저 사업의 대가일 뿐이죠.”
우리는 신고 전화를 기다리는 소방수처럼 행동합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고 늘 좀 긴장해 있다. 록산느는 밤에 자신이 보거나 들을 수 없는 다른 방에서 핸드폰을 충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살면서 트위터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활동했을 때가 인간으로서 가장 쓸모없을 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관심이 필요했고, 지나치게 단순했으며, 독설을 잘 퍼부었다.
그는 수년간 구글의 전략 전문가로 일하다 섬뜩함을 느낀 뒤 인간의 주의력을 연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무엇을 한 것인지 알아내고자 옥스퍼드 대학으로 떠났다. 그는 내게 디지털 디톡스가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씩 바깥에서 방독면을 쓰는 노력이 환경오염의 해결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메일이 올 때마다 핸드폰이 울리게 하면 어때?” 모두가 전율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 주 뒤 전 세계의 핸드폰이 주머니 속에서 울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지메일을 전보다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엔지니어들은 늘 사람들의 시선을 프로그램에 끌어와 붙잡아둘 방법을 찾아 헤맸다.
기업들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더 오래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게 전부였다.
엑손모빌이 고의로 북극의 빙하를 녹이려 하는 것이 아니듯, 집중력 파괴도 이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집중력 파괴는 현 사업 모델의 불가피한 결과다.
나는 이처럼 반대 의사를 표하는 사람을 여럿 만나면서 이들의 나이가 정말 어리다는 생각을 했다. 장난감을 직접 개발한 뒤 그 장난감이 세상을 정복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처럼 보였다. 모두가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저항하려고 앞다투어 명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꼽은 집중력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핸드폰이 아니었다. 응답자의 48퍼센트가 지목한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두 번째 이유는 출산이나 노화와 같은 생활의 변화로, 이 역시 48퍼센트의 지목을 받았다. 세 번째는 43퍼센트가 선택한 수면의 어려움 및 수면 방해였다. 해드폰은 37퍼센트의 선택을 받아 4위에 올랐다.
네이딘은 새로 이사 온 동네의 할머니들이 밤에 자다가 길 잃은 총알에 맞을까 봐 가끔씩 욕조에서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인의 56퍼센트가 1년에 단 1주일의 휴가를 쓴다.
많은 사람이 소진될 때까지 일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칭한다.
이 권리의 내용은 단순하다. 우리에게는 명확히 정해진 근무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 근무시간이 끝나면 연결을 끊을 자격이 있다. 이메일을 확인할 필요도, 다른 업무 연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2016년에 프랑스 정부는 이 권리를 법으로 제정했다.
데일은 우리의 조부모가 음식으로 인식했을 음식만 먹어야 하며 슈퍼마켓의 가장자리에서만 쇼핑을 해야 한다는 마이클 폴란의 말을 인용했다. 즉 우리는 입구에 진열된 과일과 채소, 끝에 지열된 육류와 생선만 구매해야 한다. 마이클 폴란은 슈퍼마켓의 가운데에 진열된 것들은 사실상 전혀 음식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스트레스가 쌓인 부모는 자기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녀 달래기를 힘들어하는데, 본인이 너무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그들의 자녀도 중심을 잡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한다고 느낄 때는 그 일에 집중하기가 훨씬 수월하고,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는 집중력이 소금에 전 달팽이처럼 쪼그라든다.
그는 집중력의 첫 번째 층이 스포트라이트라고 말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지금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내릴 거야” 같은 “즉각적인 행동”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중력의 두 번째 층은 스타라이트, 즉 별빛이다. 스타라이트는 “장기적인 목표, 그러니까 시간이 드는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집중력이다. 우리는 책을 집필하고 싶다. 사업을 차리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이 집중력의 이름이 스타라이트인 이유는,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별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향하던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의 세 번째 층은 데이라이트, 즉 햇빛이다. 데이라이트는 애초에 자신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주는 집중 형태다. 자신이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아는가? 심사숙고하며 명료하게 생각할 수 없다면 이런 질문의 답을 알아낼 수 없다. 제임스가 이러한 집중력에 데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눈앞의 광경이 햇빛으로 가득할 때에만 주변 상황을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산만해져서 이 햇빛의 감각을 잃으면 “여러 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데이라이트의 상실이 “가장 심각한 형태의 산만함”이며 심지어 우리가 “분열되기” 시작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정신적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찮은 목표에 집착하거나, 리트윗 같은 바깥세상의 지극히 단순한 신호에 의존하게 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해 요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다.
내가 일상의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의 너무 많은 부부이 먹기나 과로와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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