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2023(1판 34쇄)

 

 

 각각의 그림 밑에는 마침내 학명이 하나씩 적혀 있었다. 잉크가 갑자기 부드럽게 흐르고, 글자들은 제법 능숙한 솜씨로 둥근 획을 뻗고 있었다. 캄파눌라 로툰디폴리아Campanula rotundifolia, 칼미아 글라우카Kalmia glauca, 아스트라갈루스 카나덴시스Astragalus Canadensis. 데이비드는 마침내 그 이름들을, 라틴어로 된 승리의 선언이자 통달의 선언을 큰 소리로 발음하게 되었을 때의 감각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이름들은 내 입술에 얹힌 꿀과 같았다.”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단언과 똑 같은 말을 들었다고 느꼈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 하는 생각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하려는 일, 그러니까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질서를 만들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이 시련 전체에서 얻은 교훈은 딱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게 뭐였을까? 겸손을 유지하라는 것? 이를테면 북미의 모든 담수어를 발견하겠다는 목표보다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었을까? 그는 “당장 출판하라는 것”이라고 썼다. 아, 더 세게 밀어붙이라는 말이었구나.

 

 

 “나는 이미 지나간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라고 데이비드는 설명한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형을 당하기 전 브루노는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그는 갈수록 더욱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공격적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며, 이에 대한 증거는 민족주의적 제국주의, ‘지배자 민족’ 이데올로기, 귀족들의 결투, 학교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아이들, 길거리 깡패들의 언어 구사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는 형 루퍼스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좋은 자질을 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의 기술을 실행하고, 다윈의 충고대로 진화상의 친연성에 따라 생물을 분류함으로써 작동시킨 그 과정이 치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라는 진실 말이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맞아요. 직관에 어긋납니다.” 자칭 “횡설수설하는 분기학자”인 릭 윈터바텀Rick Winterbottom이 내게 한 말이다. 그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다. 그는 자기가 대적하기에 너무 센 적수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했다. 그 센 적수는 바로 직관이다. 

 

 

 에모리대학의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cd de Waal은 이것이 인간이 항상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벙법으로,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것 말이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W. B. 예이츠의 것으로 알려진 이 인용문을 나는 여러 해 동안 벽에 붙여두었다.

 

 

 하루는 자기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사랑으로 심장이 찢어질 듯 활짝 열리고 있다는 걸 “협곡이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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