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음

 

 

무뎌짐이 인생을 잉여로 만든다

풍경에 대한, 눈 오는 하늘에 대한, 출근길에 대한, 동네 이웃에 대한 무뎌짐

을 생각하며 동네를 걸었다

거울 속에는 잔뜩 무뎌진 표정의 남자가 있었다

이 무뎌진 사람이 하루 동안 느끼는 감각들은 모두

고무장갑을 씌워놓은 듯 더디고 멀었다

길과 내 걸음은 그저 목적지까지 도달하기까지의 잉여였다

가로수가 몇 개, 아이가 몇 명, 강아지가 몇 마리, 블러blur 시킨 건 누구였을까

버림받은 바람이 깨갱거리며 바짓자락을 물어재꼈다

타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타인의 감정도 늘 이런 건지 알 수가 없다

햇빛 들지 않는 반지하 같은 기분으로

음계로 치면 미나 솔이 결코 될 수 없는 마이너스 시 같은 음으로

마음속 목소리가 울린다

지겹다거나 졸리다거나 혹은 뭔가 신나고 싶다 그런 말을 속에서 한다

유독 겨울에 중심음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목격되는 시각적 소리

뚱 하게 가라앉아 다른 음들과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저기 미파솔까지 기분을 올리려면 특별한 계기나 힘겨운 노력이 있어야 하는

그래서 쉽게 지쳐버리는

술 마시다 힘 빼고 기대면 마이너스 라솔로 가라앉아버리는

그래서 당신은 어떤 음으로 살아가는지 묻고 싶다

당신의 중심음은 어느 높이에 있는지

 

 

 

 

'pl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로  (0) 2024.01.02
31일  (0) 2024.01.02
까꿍이, 안녕  (0) 2022.10.13
설원을 달리는 친구  (0) 2020.12.28
한때는  (0) 2020.04.16

+ Recent posts